등록 : 2010.09.07 18:30
수정 : 2010.09.0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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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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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우리 사회에 공정성이라는 말이 퍼지고 있다. 딸의 특채 건에 대하여 특별히 문제될 것 없다며 여느 때처럼 의연한 태도를 취하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급히 국민에게 사과했다. 청와대의 신호를 감지하고서다. 집권 이후 지금까지의 여권이나 청와대 분위기로는 상상할 수 없던 특채 감사까지 등장했다. 김태호 총리 후보나 다른 장관 후보도 현 정권에서는 그리 문제삼지 않던 위장전입·부동산투기 같은 내용으로 사퇴까지 이어졌다. 처음에 당당했던 이들이 착각한 것은 여전히 집권 초기의 튼튼한 명박산성이 자신들을 보호해주리라고 믿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당당했던, 때로는 비굴했던 모습은 공공성에 입각한 국민들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언제나 상관없다는 식으로 밀어붙여온 현 정권의 모습과 이어져 있다. 공공성은커녕 미국 이익을 대변한 협상에 대하여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시정을 요구한 촛불사태, 서민을 테러범으로 몬 용산사태, 인권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던 쌍용차사태, 사회공정성을 무엇보다 후퇴시킨 미디어법 제정 등 공정성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정권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식 회기 중의 국회의원에게 막말을 해도 무사했던 유 장관이 딸 취직 문제로 사퇴까지 갈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은 집권 초기가 아니며 이미 지난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심판 속에 그저 은평에서 얻은 작은 촛불 살리기에 바쁜 상황임을 모르고, 누려오던 좋은 시절의 단맛에만 취해 있었다. 결국 시절이 바뀌고 점차 나타나는 레임덕에 가장 민감한 이가 사회공정성을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집권 초기의 분위기 속에 레임덕이 온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외교부 수장이나 여러 공직 후보자들의 인선 라인의 비극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외교부 수장과 청와대 주변에서도 이런 내부 변화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떤 이는 그만큼 현 정권이 급박했다고 하지만, 과거 쇠고기 수입에서 멀쩡한 과학마저도 왜곡하면서 대국민 사기극을 연출한 이들이다. 그 후 당시 강변했던 내용이 시간이 흐르면서 실제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나도 뻔뻔스레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방향을 바꾸면서까지 버티는 정권이다. 진정 현 정권이 사회공정성을 위한 변화가 있었다면 그런 면에 가장 민감해야 할 외교부 수장마저 정권의 변신을 감지 못할 리 없다. 그 원인은 정권이 실제로 변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유 장관이나 총리 후보를 출연시켜 아무리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냈어도 현 정권의 공공성이란 몸짓이 결코 명박산성을 허무는 것이 아니다. 슬픔에 찬 천안함 유족을 짐승에 비유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막말과 더불어 쌍용차사태로 악명이 높은 인물을 반대를 무릅쓰고 청장에 임명했다. 청문회에서 그렇게 사죄할 것이 많은 이가 굳이 법을 집행하는 경찰 총수여야만 하는 정권이다. 누구보다 먼저 사퇴했어야 할 이를 자신의 레임덕을 지켜줄 사람으로 앉힌 것이다. 이는 스스로 말하는 사회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떨어지는 낙엽으로 천하의 가을을 알듯이 유명환 장관의 혼란과 조현오 청장의 임명을 볼 때 현 정권의 사회공정성이란 단지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명박산성은 오늘도 건재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들이 내건 사회공정성은 단지 국민들의 거칠고 엄한 심판을 모면하기 위해 명박산성의 겉 색깔만 새로 칠하는 형상이다.
그렇기에 현 정권은 사회공정성으로 살길을 모색하지만 그동안 주요 언론 세력과 결탁해 권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던 이들에게 공공성이란 판도라의 상자일 수 있다. 비록 사회공정성으로 치장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현 정권에게 사회공정성은 살길이 아니다. 그동안 자신들의 행태를 드러내는 판도라의 상자일 수 있다. 어쩌면 이들은 공공성의 그림자만으로도 화들짝 놀라, 열었던 상자의 뚜껑을 곧 닫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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