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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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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답했다. “좀 늦군요. 그래도 내용은 많이 준비한 것 같으니 좀 기다려 봅시다.” 한국·중국·일본이 돌아가며 주최하는 이 행사에서, 이번에는 중국이 주최측이었다. 지난 8월 초, 상하이 엑스포 유엔관 안의 국제회의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겨레경제연구소가 한국·중국·일본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연구한 지 3년째다. 중국 및 일본 전문가들과 일할 기회가 점점 많아진다. 그런데 중국 전문가와 일본 전문가들은 자주 부딪쳤다. 두 강대국 사이의 자존심 대결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사실 미시적으로도 차이가 컸다. 중국 전문가들은 거시적 맥락, 국가 정책의 문제부터 이야기를 풀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총론과 당위에 강하다. 반면 일본 전문가들은 꼼꼼하다. 각론을 중시하고, 범위가 작더라도 정확한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당위보다는 실용을 중시하고, 내용 없는 구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동 회의에서는 한국인의 ‘허브’ 역할이 중요해진다. 굳이 자임하지 않아도 자꾸 중재자 역을 맡게 된다. 경제발전 양상도 중간이고, 정서도 중간이라서 중재역이 가능한 것일까? 심지어 시간 지키기 같은 기본 예절에서도 한국인은 중간인 듯하다.
한국·중국·일본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찾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팽팽한 긴장에 완충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렇다. 발전 단계가 다른 세 나라 사이에 형성된 공급 사슬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조심스럽지만, 세 나라 공통의 과제인 북한을 둘러싼 긴장을 해소하는 데도 지역공동체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공동체에서 한국의 소임은 막중하다.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토론하는 자리에서 내가 느낀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이런 대화를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세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기업과 시민사회 등 민간에서 시작하고 정부는 지지하는 순서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지역의 이기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진보적인 것이라야 한다. 셋째, 공동의 이해관계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주제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동아시아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은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가 가장 쉽게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는 주제 중 하나다. 국제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주제이면서, 공동체를 중시하는 동아시아 사회문화적 전통과도 연결고리가 있으며, 서구 중심으로 만들어진 기업 평가 기준에 대응해야 한다는 공동의 이해관계도 갖고 있는 주제다.
최근 서울글로벌콤팩트연구센터에서 구상중인 ‘5W 운동’도 비슷한 주제가 될 수 있다. 동아시아 기업이 주체가 되어, 이 지역의 전통 지혜를 발굴하고, 그 지혜로 물 문제, 절멸 언어 문제 등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는 기획은 이런 원칙에 맞아떨어진다. 이런 주제를 계속 발굴하고, 자원을 집중해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처한 위치는 기회와 함께 책임도 부과한다. 작은 나라지만 작지 않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거꾸로 그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펼치면서 동아시아 지역 평화에 기여해야 하는 책임도 있다.
지금까지 가깝게 남아 있는 내 유학시절 친구 대부분은 한국·중국·일본인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오래 남아 있을 가까운 친구가 필요하다. ‘동북아 균형자’라는 용어가 다시 떠오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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