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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13 18:33 수정 : 2010.09.13 18:33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도지사를 두 번이나 역임한 인물이 총리에 내정됐다가 낙마하자 해당 지역의 한 언론은 이 사태를 “중앙정치권에 의한 지역인물 배척”으로 보는 반응을 보였다.(<경남신문> 8월30일치)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언론답지 못한 반응이다. 누가 봐도 문제가 많은 인물을 단지 자기 지역 출신이라고 옹호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나 그런 어리석음의 배후에 지역민들의 뿌리 깊은 소외감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중앙과 지방의 격차 혹은 불균형은 이제 거의 수습 불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이 불균형의 필연적인 결과는 서울과 지방의 공멸일 것이다. 지금 수도권이 과잉인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반면에, 지방은 조용한 절망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정치가들은 선거철마다 끊임없는 개발공약을 늘어놓지만, 그 결과는 예외 없이 아까운 땅과 산천의 파괴로 나타날 뿐이다. 중앙행정기관이나 국영기업체 혹은 대기업의 일부를 지방으로 옮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그것이 사태를 악화시켜온 기왕의 경제성장 논리에서 조금도 벗어난 게 아닌 이상,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민주주의이다. 오늘날 서울이든 지방이든 어디서나 우리의 삶이 불행한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향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본과 국가권력이 베풀어주는 시혜에 일희일비하면서 우리는 초라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시급한 것은 지역공동체의 경제적 자립성이다. 이에 대한 다양한 방책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손쉽고 확실한 방법은 지역화폐를 발행하여 지역사회 내부를 순환하게 하는 것이다. 지역화폐는 해당 지역 경계 안에서만 유효한 화폐이기 때문에 전국적인 혹은 국제간의 거래에는 사용할 수 없다.

그 대신 지역민의 생산적 활동과 노동의 성과를 지역 외부로 뺏기지 않고 지역 내에 보존, 순환시킴으로써 활기있는 지역경제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화폐는 대기업이 경영하는 대형 할인점들을 통해서 지역민들의 피땀어린 돈이 서울로, 뉴욕으로, 투기꾼들의 손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흥미로운 선례가 많지만, 대표적인 지역화폐는 1932년 오스트리아의 소도시 뵈르글에서 시행된 실험이다. 세계적인 공황의 여파로 이 소도시 역시 심각한 불황 속에서 실업자가 넘치고 상거래는 저조하고 도시재정은 파탄 상태에 빠져 음울한 분위기였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명한 결단을 내린 시장이 있었는데, 그는 공식적인 화폐의 부족 때문에 지역민의 삶이 피폐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시의회의 협력을 얻어 ‘노동증서’라는 이름의 지역화폐를 만들어 공무원의 봉급이나 각종 공공사업비로 지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화폐는 특이하게도 시간이 경과하면 가치가 감소되도록 고안되어, 화폐 소지자는 매달 초에 액면가의 1퍼센트에 해당되는 스탬프를 사서 붙여야 했다. 따라서 오래 지니고 있으면 오히려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화폐는 신속히 순환하고, 소비를 촉진하고, 빠른 경제회복을 가능하게 했다.


뵈르글의 실험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를 모방하려는 도시들이 늘어났다. 그러자 이 운동의 확산을 우려한 국가권력과 금융자본은 화폐 발행이 중앙은행의 독점적 권리라고 주장하며 이것을 금지했다. 이로써 뵈르글의 실험은 14개월 만에 중지되었다.

중요한 것은, 뵈르글의 실험 중단은 어디까지나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의 개입 때문이지 지역화폐 시스템 자체의 결함 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지역화폐는 지역사회의 자립성을 강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유용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중앙정부나 대기업의 시혜를 기다리고 있어서는 영구히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한다.

지역화폐를 통한 자주적 삶의 실천은 당장에 어디서든 시작할 수 있다. 만약 권력이 방해한다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싸우면 될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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