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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9.23 22:25 수정 : 2010.09.23 22:25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이번 추석 가족 모임 최대의 화젯거리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군요. 저희 집은 단연코 <슈퍼스타K2>였습니다. 미국 ‘아메리칸 아이돌’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아마추어 가수들의 서바이벌 게임 프로 말입니다. 143만의 시민이 가수 지망생으로 참여한 이 프로는 케이블 텔레비전 사상 최초로 12%대를 넘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하며 태풍과 같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그제 가족 모임에서 아버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아침 방송에서의 눈물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셨고 동생은 장관 딸의 특채 파동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지만 가족 모두가 눈물과 분노를 공유한 압도적 주제는 바로 <슈퍼스타K2>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프로에는 우리의 삶과 시대의 결이 가장 압축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녹아 있기 때문이지요. 최근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노래를 들려드리지 못한 안타까움, 지독히 가난한 삶의 저주 등 저마다 절실한 사연들이 스며든 그들의 노래는 듣는 이의 가슴을 저밉니다. 평범한 외모와 ‘스펙’을 가진 이에게서 ‘소름을 돋게 하는’ 기막힌 노랫소리가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저절로 그들의 광팬이 됩니다. 반면에 어차피 승자독식의 서바이벌 게임인 걸 뻔히 알면서도 오직 ‘일등주의’에 물든 참가자를 볼 때 우리의 가슴속에는 저주의 불꽃이 타오릅니다. 이 감동과 저주로 때로는 우리의 얼굴이 환해지고 때로는 흉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이 프로의 기획자와 전문가 패널들은 얄밉게도 너무 잘 알면서 흥행의 마법을 연주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를 다 시청할 시간이면 정치학 전공 책 한권은 족히 보았을 텐데 전 후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프로는 일반적으로 정치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는 진보주의는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진보개혁정당 정치가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프로는 이른바 2등 브랜드가 어떻게 1등 브랜드와 경쟁해야 하는지의 노하우를 잘 보여줍니다. 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들이 참여하는 지상파의 명품 프로들이 있는데 굳이 귀찮게 케이블의 한 채널을 찾아가야 할까의 이유를 이 프로는 감동적인 ‘시민 가수’의 개방적 콘테스트를 통해 명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정치에 응용하자면 한나라당 내 소위 대권주자들 서바이벌 게임 프로만 보면 2012년 미래를 다 알 수 있는데 굳이 다른 정당들 프로를 보아야 하는지 이유를 선명히 보여주어야 한다는 이야기이지요.

둘째로 이 프로가 시청자들을 중독시키는 가장 큰 힘은 시민 가수들의 노래 그 자체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그 노래에 스며든 그들의 삶입니다. 특권층 딸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우정 어린 경쟁 속에서의 절실한 코리안드림이 있기에 그들 노래는 더 감동적입니다. 지난해 <슈퍼스타K>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가수 이효리를 노래로 울린 시각장애인 가수 팀이 바로 그 예이지요. 아직도 진보개혁진영의 정치가들은 어떤 진보적 노래를 만들 것인가에만 정신이 팔려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루하루 인생을 사는가인데 말입니다.

이 프로는 진행 방식에서도 전문가와 개방성의 적절한 결합으로 성공하고 있습니다. 예리하게 아마추어 가수들의 한계를 파고드는 전문가 패널들은 역시 내공 있는 장인이란 무엇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시민들은 이러한 전문가들 평가를 참조하면서도 또 그들의 과도한 전문가주의나 주관성을 견제하며 균형을 잡습니다. 도대체 많은 경우 정치의 진정한 장인도 아니고 그저 자기들 세계 정치의 활동가들만으로 이루어지는 평가로 후보자들을 선출하는 진보개혁정당들은 과연 <슈퍼스타K2> 프로보다 어떤 점이 나은지 묻고 싶습니다.

각 ‘진보개혁’ 정당들이 개별적으로 ‘슈퍼스타K’ 프로를 만들어내기 어렵지만 최소한의 진보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면 조만간 ‘슈퍼스타K 시리즈 공동기획단’이라도 출범시켰으면 합니다. 다음 추석의 최대 화젯거리가 무엇이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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