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30 20:51
수정 : 2010.09.30 20:51
|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정부가 310조원에 달하는 2011년 예산안을 발표하였다. 총지출은 올해보다 5.7% 증가하지만, 복지지출은 6.2%를 늘린 친서민 예산이라고 한다. 세간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보수진영에서는 복지지출이 과하다며 정부의 포퓰리즘을 비난하고, 야권에서는 서민지원의 내실이 빈약하다며 차가운 반응이다. 그런데 겉치레를 걷어내고 찬찬히 실상을 들여다보면, 서민예산이라는 이름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내년 복지지출이 86조로 잡혔는데 올해보다 5조가 많은 액수다. 증가분 중 큰 몫을 차지하는 걸로는 2조2000억이 느는 연금지출이 있고, 주택지출도 1조3000억이 늘어난다. 연금은 국민이 낸 보험료 비축분에서 나가는 의무적 지출이니 정부가 생색낼 게 아니다. 또 주택지출은 대부분이 건축비여서 복지로 구분하는 게 애초부터 맞지 않는다. 연금과 주택을 빼고 따지면, 복지예산은 1조5000억이 느는 셈이다. 증가율로는 4%도 되지 않아 전체 예산 증가율보다 낮다. 3%대의 물가인상률까지 생각하면 내년 복지예산은 동결됐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 모른다. 10조가 되는 기초보장과 기초노령연금 예산 증가분이 3000억에 그치고, 7조가 넘는 보건·의료에서 1400억 정도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역점을 두었다는 보육분야에서 5000억 정도의 증가가 눈에 띌 뿐이다.(참고로 증가분 1조5000억 중 나머지 5000억가량은 노동·보훈 몫에서 생겼다.)
정부는 경기회복의 온기가 저소득층에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며 서민 지원을 강조하였지만, 막상 투자는 외면하였다. 경제위기 때 기초보장 지원을 받지 못하던 40만가구에 한시적 생계구호를 하였지만, 올해 정부는 위기가 끝났다며 재빨리 지원을 끊었다. 복지부 실태조사 결과로는 이들의 3분의 2가 월소득 10만원 미만이었다. 근로능력이 없는 노인·장애인으로 이루어진 극빈층 가구들인 것이다. 하지만 연락도 닿지 않는 자녀들의 부양의무를 들어 이들에 대한 지원을 거부해온 정부 태도는 내년에도 변함이 없을 모양이다.
일하는 서민에 대한 정부 지원도 줄어들고 있다. 국제기준에 따르면 우리 근로자는 넷 중 한 명이 저임금 근로자이다. 평균적으로 6명의 근로자 중 1명만이 저임금층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하면 최악의 경우이다. 이들 중 유일하게 우리와 처지가 비슷한 미국에서는 그나마 근로소득세액공제(EITC)라는 제도로 저임금 근로자를 돕고 있다. 일을 열심히 할수록 급여를 올려주는 제도라서 인기도 좋아, 해마다 한 집당 최대 600만원씩 후하게 지원을 한다. 그래서 한 해에 500만명 이상이 빈곤을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지난 참여정부도 근로장려세제라는 세금지원제도를 추진하였다. 저소득 근로자에게는 일을 하면 빈곤을 면할 수 있게 하고 기초보장 수급자들에게는 자립의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2009년부터 국세청은 첫 급여로 59만가구에 4500억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올해 두번째 급여가 지급되었는데 가구 평균 77만원 정도로 월평균 6만원 좀 넘는 박한 수준이다. 더욱이 지난해보다 규모가 줄어 56만가구에 4300억이 지원되었다. 해가 바뀌어도 최하소득계층으로 맞춘 소득기준을 그대로 묶어두니 대상이 줄어든 까닭이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는 대상자가 더 줄어들 터이니, 우리 정부의 복지행정은 이렇게 뒤로 가고 있다.
정부는 2008년부터 5년간 90조원의 세금을 줄이는 감세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를 따르면 2011년에만 24조원의 세수가 줄어든다. 그 혜택 대부분이 고소득자와 대기업 몫이니 엄청난 규모의 부유층 복지라 하겠다. 지난해 재정적자가 커지자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를 일시 멈추었지만, 정부가 감세를 철회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부자감세에 사로잡힌 정부가 서민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이 무엇일지, ‘서민희망’ 예산이 보여주는 것은 그것이 아닐까?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