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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05 09:53 수정 : 2010.10.05 09:53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지난봄 ‘4대강 살리기’라는 거짓 이름으로 멀쩡한 강을 죽이고 있는 현장에 다녀온 뒤 시인 신경림 선생은 어느 모임에서 “지금 이 공사를 추진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막지 못하는 사람들도 천벌을 면치 못할 것 같은 두려운 느낌”을 술회한 적이 있다. 아름다운 강이 참혹하게 변하는 것을 보면서 시인은 자신의 절망적인 기분을 이렇게 극적으로 표현했을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은 조금도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사실 ‘천벌’은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서민들의 생활을 위협하기 시작한 채소 품귀 사태는 그 첫 징후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번 사태의 책임이 전적으로 4대강 공사에 있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봄부터 심상치 않았던 이상기후로 올해 작황이 나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고, 그 우려가 현실화된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4대강 공사로 인해 채소 경작지가 심각한 축소를 강요당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정부측은 4대강 공사로 줄어든 농경지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매우 정직하지 못한 해명이다. 강기갑 의원실의 조사에 의하면, 4대강 공사로 사라진 채소 재배지에 대한 정부측 통계는 일종의 속임수를 내포하고 있다. 즉, 그 통계는 정부에 의해 토지 보상비를 받는 농토에 한정하여 추산된 것일 뿐, 사유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토지보상에서 제외된 하천부지에 대한 고려는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천둔치를 포함한 4대강 주변 농지는 강의 흐름에 의해 오랫동안 형성된 옥토 중의 옥토일 뿐만 아니라, 장상환 교수의 추산에 의하면, 전국 채소 재배면적의 13.5%라는 막대한 비중을 차지해왔다. 이렇게 아까운 농지가 도대체 합리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토목공사 때문에 돌이킬 수 없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3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수도권 35만가구에 채소를 공급해온 팔당 근처 유기농 단지는 거기에 자전거도로와 ‘생태공원’을 건설하겠다는 정부 계획 때문에 농사가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팔당 유기농 단지는 대통령 자신이 한때 이곳을 방문하여 세계적인 친환경 농업 단지로 육성할 것을 약속했던 곳이다. 이 터무니없는 만행을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를 찾던 나머지 유기농이 강물을 오염시키는 범인이라는 말까지 환경장관이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유기농마저 오염을 일으킨다면, 그래서 그 때문에 정말 환경이 걱정된다면, 이 나라는 아예 농사를 전면적으로 포기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리하여 어디서 어떻게 식량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전부 자전거나 타고 매일 생태공원 나들이나 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 오랫동안 이 나라의 권력 엘리트들은 기본적으로 돈벌이가 안되는 농사에는 철저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한때 대기업 총수들의 모임에서 우리나라 농지를 거의 전면적으로 없애는 방안까지 거론된 적이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집중해서 그 이익으로 외국에서 식량을 사들여 먹으면 된다는 논리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역대 정부들도 책임있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진정으로 농토와 농민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행사해본 적이 없다. 4대강 공사는 농사 경시라는 어리석은 사고(혹은 사고력 결핍)의 노골적인 표현이다.

지금과 같은 배추값 폭등은 우연한 현상도, 일시적인 사태도 아님이 분명하다. 세계 전체적으로 10억의 인구가 굶주리고 있고, 어디에서나 식량위기가 갈수록 급박한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농사를 계속 무시하는 정책의 귀결점을 예견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산업국가들 중 가장 낮은 25%의 식량자급률을 획기적으로 개선해보려는 노력이 없는 한, 파국은 필연적이다. 지금도 계속되는 대량기아 사태로 세계인들의 손가락질과 동정을 동시에 받고 있는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65%가 넘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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