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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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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얼굴 붉히는 일이 잦았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타이 친구가 “자식 문제로 장관이 물러나는 한국”을 떠들어대는 바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며칠 뒤에는 인도 기자가 한국 기업의 족벌구조를 놓고 이것저것 캐묻는 통에 얼굴이 붉어졌다. 어제는 인도네시아 친구가 전화통에 대고 “3대째 세습하겠다는 북한은 대체 왜 그래?”라며 내게 대뜸 역정을 부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따지고 보면 모조리 세습 문제다. 그런 ‘봉건지배체제’가 주름잡는 남북한 상황을 놓고 일일이 대꾸하기엔 심사가 복잡했다. 서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이번에는 얼굴에서 더 열이 났다. 북한 정권 세습을 놓고 언론은 저마다 도덕적 판단을 근거로 적개심을 퍼뜨려댔다. 정당들은 마치 상상하지 못했던 일인 양 분노를 쏟아댔다. 좌우도 없고 진보·보수도 없었다. 그 틈에서 한마디 했던 민주노동당은 동네북이 된 꼴이었다. 북한 정치를 분석할 만한 전문지식이 없는데다 핏줄을 내건 정치체제를 부정해온 나는 마땅히 정권 세습을 달갑잖게 여겨왔다. 그렇더라도 북한 정치체제를 ‘정치적 대상’이 아닌 ‘도덕적 대상’으로 몰아가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 동의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세습을 말해보자.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필리핀 대통령 아키노는 어머니가 코라손 전 대통령이다. 전임 대통령 아로요는 아버지가 마카파갈 전 대통령이다. 쿠마라퉁가 전 스리랑카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대통령과 총리를 했다. 인도의 네루 가문은 3대에 걸쳐 총리를 했다. 인도네시아도 아버지 수카르노와 딸 메가와티가 대통령을 했다. 파키스탄도 부토 가문에서 아버지와 딸에 이어 사위까지 총리가 나왔다. 방글라데시도 두 전직 대통령 가문에서 나온 딸과 아내가 지금껏 세습정치를 해오고 있다. 비록 선거를 거친 이 나라들과 폐쇄적인 선출제도를 지닌 북한 사이에 세습 방법에서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특정 가문이 한 나라 정치판을 쥐락펴락하는 봉건적 환경과 정치체제는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많은 정치학자들이 이 선거민주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안을 찾아 고민해왔던 거다. 타고난 핏줄과 선택받은 환경의 대물림을 세습으로 규정한다면 북한뿐 아니라 모든 나라와 체제들도 그 세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주주의의 챔피언으로 자처해온 미국에서도 2대와 6대 대통령을 낸 애덤스 가문과 41대와 43대 대통령을 낸 부시 가문을 비롯한 숱한 상하원 의원 세습이 그런 핏줄의 특혜 덕에 가능했던 셈이다. 일본 정치체제는 아예 가문을 당연시하는 세습구조 특성을 지닌 경우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세습에서 자유로운가. 사유재산권을 내건 사기업의 세습이야 자본주의 신성불가침 제1조로 세계적인 현상이라 치더라도, 한국 사회의 부를 독점해온 재벌기업의 족벌지배구조와 그 세습의 폐해는 이미 한계를 넘었다. 단 1%의 자본가들이 국토의 45%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 그 땅은 또 어디로 세습하겠는가.
자본 세습 못지않게 권력 세습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요즘 전 외교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의 자식 특채 문제가 화제에 오른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굳이 이름을 나열할 것도 없이 정치인 가문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건 세습의 폐해가 북쪽뿐 아니라 남쪽까지 모두 사로잡고 있다는 뜻이다. 권력과 자본은 축적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고 경쟁자를 조건 없이 짓밟는 특성을 지녔다. 해서 권력과 자본은 그 저장고로 상대적 안전성을 지닌 핏줄을 택했다. 그게 세습이다. 민주주의라면 그런 세습을 견제하고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러니 세습을 끊어버리는 일이야말로 시민사회가 온전한 민주주의로 가는 첫걸음이다. 마음껏 세습을 비판하고 고발하자. 단, 남의 세습만 나무라지 말고 우리의 세습도 모두 공정하게.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 아시아네트워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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