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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08 19:34 수정 : 2010.10.08 19:34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했다. 언론에는 국책연구소 보고서를 인용한 장밋빛 전망이 넘쳐나지만, 나는 심드렁했다. 경제 예측, 특히 장기적 예측은 의미를 갖기 어렵다. 목표치에 맞춰 가정을 정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데 협정문 안에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다. 바로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조항이다. 앞으로의 무역에는 제품의 가격과 쓰임새뿐 아니라, 사회적·환경적 가치도 큰 영향을 끼치리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조항이다.

주목할 만한 표현이 여러 군데서 나온다. 이번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 두 당사자는 ‘단순한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환경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는 지속가능발전의 목적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국제무역의 발전을 증진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협정문에는 무역을 늘리기 위해 노동과 환경 기준을 낮추지는 않겠다는 약속, 즉 지금 상태를 최저선으로 개선만 시켜 나가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여기서 노동 기준은 1998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선언이다. 이 선언에는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강제근로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철폐를 핵심 노동기준으로 채택했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결사의 자유다.

한국 사회에는 결사의 자유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매우 낮다. 대표 기업이 공공연하게 ‘비노조 경영’이라는 경영 방침을 내세우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정도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통해 권리를 주장하고 협상하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유럽 문화와 대조적이다. 제도를 통해 이런 문화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새 무역 질서에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협정문은 또 환경기술 제품과 재생가능한 에너지 제품, 에너지 효율적 제품 등에 대해서는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우선 철폐하기로 약속했다. 또 협정문은 ‘공정무역’과 ‘윤리적’ 제품 및 사회책임경영 기업 제품의 무역을 촉진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시민사회와 대화를 하고 감시를 받는 메커니즘을 도입할 것을 협정문에 명시한 것도 인상적이다. 앞으로 생산자를 고려하는 공정무역 제품, 사회적 가치 실현을 경영의 주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 사회책임경영에 나서는 영리기업한테 더 큰 사업기회가 열릴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시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먼저 구매에 지속가능성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 가격과 품질 이외에, 납품 기업의 환경과 사회 기여도를 평가하는 ‘지속가능한 정부조달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사회적 기업 제품, 공정무역 제품 등 환경 및 사회적 가치를 생각한 제품을 우대하는 공공기관 구매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기업은 이제 사회책임경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않으면 경제적 성장도 어렵게 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일부 대기업의 활동이라고 여겨지던 사회책임경영 활동이, 이제 수출하거나 수출기업에 납품하는 중견, 중소기업의 이슈로 확대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시민사회는 이 협정이 지속가능발전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실제 흘러가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무역은 관료와 기업의 일이라고 내버려둘 일이 아니다. 시장은 제품과 서비스만 거래되는 곳이 아니다. 문화와 사회적 가치가 동시에 교류되는 곳이다. 시장의 통합은 가치와 문화의 통합도 수반한다. 자유무역협정에서도 사회적 가치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10년 뒤 우리 소득이 1% 늘어날지 5%가 늘어날지보다는, 10년 뒤 우리가 어떤 사회, 어떤 환경 안에서 살게 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번 협정 내용 중 가장 장기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칠,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조항의 의미를 되새겨야 하는 이유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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