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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12 20:41 수정 : 2010.10.12 20:41

김별아 소설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요?”

백두대간의 대표적인 악산(惡山)으로 꼽히는 봉우리를 오르는 동안, 얼마 전 특강에서 하고픈 질문이 너무 많다며 연락처를 물어왔던 학생의 이메일 첫 문장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편견으로 재단하지 않고 섣부른 동정 없이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작 스무 살에 폐허를 말하는 젊은이에게, 언젠가의 나를 닮은 그의 질문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을 수 없어 허영허영한 네발걸음이 무거웠다.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지도에 ‘절벽 100미터’라고 표기된 위험 구간이 있었다. 네 부분으로 나뉜 로프 구간 중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그야말로 젖 먹던 힘을 다해 기어올랐다. 등산 교본에서는 암벽등반을 ‘인간의 본능이라 할 오르기에서 즐거움을 찾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몸짓’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어쨌거나 순수하긴 순수할 수밖에 없다. 손은 바위 턱을 잡고 감싸고 당기고 밀기에 순수하게 더듬거리고, 발은 바윗면의 울퉁불퉁하고 거칠고 오목한 곳을 찾아 디디기 위해 순수하게 버둥거린다. 로프를 놓는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팔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런데 남아있던 막고비에 비하면 앞의 셋도 별것 아니었다. 경사가 수직에 가까운 바위를 기어오르노라니 “도저히 못 하겠어요!”란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안전벨트에 자일을 걸고 잡아끄는 대로 올라가야 마땅하건만 홈 하나 없는 매끄러운 바위를 디디려니 발은 거푸 허방다리를 짚고 밧줄을 잡은 팔은 힘이 빠져 흐늘흐늘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죽지 않겠다! 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위에서 뻗어 내민 손을 잡는 순간 죽음의 공포로 무겁게 늘어졌던 내 몸은 삶을 향해 솟구쳤다. 그랬다. 삶은 본능이었다. 치사하고 더럽고 구차하지만, 갸륵하고 애틋하고 미쁜 욕망 혹은 의지.

얼마 전 ‘행복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최윤희씨가 배우자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매달 집으로 배달되는 작은 잡지에 실린 그의 마지막 글은 귀찮고 짜증스런 ‘개벼룩’ 같은 시련까지도 역경을 이겨내는 힘이자 삶의 지혜가 되는 특별한 선물이리라는 내용이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밧줄을 움켜잡고 산다. 누군가에게는 돈과 명예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것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놓칠 수 없는 밧줄일 것이다. 그럼에도 때로는 그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헐떡거리며 묻는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그 자신이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심리를 묘파한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로 유명한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인간이 누군가에게 혹은 무엇인가에게 던질 만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와 반대로 인간은 삶으로부터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기에 행동을 통해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묻기보다는 대답해야 한다. 그 발상의 전환 자체가 놀랍고 신선했다. 삶이 내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 이건 그저 의뭉스레 씩 웃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때로 해답은 엉뚱한 곳에서 발견된다. 다음주가 중간고사 기간이지만 시험공부 대신 산행을 선택한 아이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게 더 어려운지 산을 타는 게 더 어려운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그때 미망을 깨우는 포효처럼 내 귓가에 들려온 중1 녀석의 우문현답.

“그야 당연히 산을 타는 게 더 어렵죠! 공부는 하는 척할 수도 있지만 산은 타는 척할 수 없잖아요?”

할(喝)! 열세 살짜리의 말이 그토록 어렵고 무겁던 질문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었다. 산은 타는 척할 수 없고 삶은 사는 척할 수 없다. 산을 대신 올라줄 수 없는 것처럼 무엇을 위해 사는지는 누구도 대신 대답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생난리 끝에 절벽을 기어올라 닿은 곳에서 내가 무엇을 보았는지도 말하지 않겠다. 자신의 산은 오직 스스로 올라야 그 끝에 닿을지니.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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