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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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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약 40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는 전후 반세기 이상 유지되어온 “평화국가” 체제가 변화된 국제정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유물이라 단정하면서 “평화창조국가”를 지향할 것을 제창하고 나섰다. “수동적인 평화국가”에서 “능동적인 평화창조국가”로의 전환을 중심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전후 일본의 국가적 아이덴티티인 “평화국가” 개념 자체의 전환을 정면으로 제기한 공식 문서로서는 최초가 아닌가 생각된다. 자민당 시절의 논의보다 한발 앞선 주장이 다수 포함된 문서가 민주당 정권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이 보고서는 자위대로 집약되는 일본의 군사력을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종래의 방위태세는 “정적 억지”로서 “군사력의 역할이 다양화하고 있는 현재 그 유효성이 상실”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좀더 능동적인 “동적 억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소 문학적인 표현이지만, 자민당 정권 말인 지난해 8월에 이전 간담회 보고서가 “존재에 의한 억지”에서 “운용에 의한 억지”로의 전환을 촉구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요컨대 종래와 같이 단순히 자위대 병력과 장비를 전개 배치하는 “정적 억지”는 낡은 시대의 유물이며, 이제부터는 “경계 감시와 영공침범 대처를 포함한 적시적절한 운용을 통해 높은 방위능력을 명시”하는 “동적 억지”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주장이다. “평시와 전시의 중간인 회색 영역(그레이 존)의 분쟁”에의 대처를 강조하고 있는 점을 아울러 고려하면 그 구체적인 내용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또 일본의 “억지력”의 대상 범위도 일본 영토와 “주변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공해와 배타적경제수역 및 그 상공, 우주”와 같은 “국제공공공간”(글로벌 코먼스)에까지 확장되었다.
이런 발상의 전환 위에서 구체적으로는 기반적 방위력 구상, 전수방위, 비핵 3원칙, 무기수출 금지 3원칙 등 종래 일본 방위정책의 근간을 이루어온 기본 원칙의 전면적인 수정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예상을 초월한 대담한 제언에 대해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 일부 언론이 비판을 하기는 했다. 간 총리와 센고쿠 관방장관 등 총리관저는 비교적 신중한 입장이라고도 전해진다. 하지만 정책 논의는 별로 보이지 않고, 이 보고서를 토대로 올해 연말까지 새로운 방위계획 대강(大綱) 작성 작업이 진행되게 된다.
올해 2월에 간담회를 발족시킬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아시아 지역 전문가를 다수 배치하는 등 새로운 방위정책을 지론인 “동아시아 공동체” 추진과 유기적인 연결을 구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민주당 정권의 “정치 주도”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가운데 방위성과 외무성 관료 주도로 되돌아간 결과, 자민당 정권 이상으로 “신냉전”적인 사고가 전면에 대두한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가 발표된 직후인 9월7일 센카쿠열도 부근에서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에 충돌한 중국 어선이 나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중-일 대립이 격화되면서, 해상 방위력 강화를 요구하는 일본 여론도 급등했다. “동적 억지”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는 가운데 신중론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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