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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20 08:02 수정 : 2010.10.20 08:02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북한의 김일성 일가 권력 세습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이 이를 말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는 이들의 고민이 담겨 있음을 말해 준다. 북한의 3대 세습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기에 민노당의 결정은 당내에서 충분히 고려된 뒤 제시되었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단지 침묵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가는 보수언론의 유치함은 더 이야기할 것 없다. 그렇다고 민노당의 결정이 진보세력을 규합해야 할 정당으로서 적절했는지 선뜻 말하기 어렵다.

분단 피해가 총체적으로 민족의 발목을 잡는 현실에서 진보, 보수를 떠나 대부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바란다. 민노당은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잘 모르는 남쪽은 북한 세습을 비난할 수 없다’는 입장과 더불어 비난보다는 침묵이 한반도 평화통일에 기여할 것으로 보았다. 물론 북한 세습을 비난한다고 해서 상호 존중의 남북 합의를 깨는 것도 아니며 북한과의 관계 단절로도 직결되지 않겠지만, 이들의 시각에는 평화통일을 위해서 북한 정권과의 관계 유지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과 북한의 특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다.

그런데 민노당은 진보의 사회 보편적 가치를 표방하는 남한의 정당이다. 정당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대중적 지지 기반 위에 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북한 세습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해도’라는 표현을 사용해야만 한 것은 이들이 정당인지 아니면 의식화된 인사들 모임에 불과한지를 의심하게 한다. 국민을 계몽시키려는 개인이나 연구소 수준에서의 오만한 입장 표명이라면 몰라도 대중적 지지가 필요한 정당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다.

예상됐던 세습 상황임에도 자신들만의 논리에 빠져 정당과 국민 간의 공감대를 위한 사전준비 없이 대중적 공감을 놓친 셈이다. 북한 상황을 이해하고 수용한 민노당이라면 자신이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 일반 대중의 눈높이도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했어야 했다. 이는 결코 포퓰리즘이 아니며 정당으로서의 책무이다. 조중동이 만든, 진보란 역시 종북 무리에 불과하다는 올가미에 걸려든 것은 결코 다른 이의 탓이 아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북과의 대화를 위해서 3대 세습에 대한 침묵도 필요하다는 입장은 사회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정당으로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우리에게 통일에 대한 간절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진정한 진보의 가치란 통일 이후에도 추구돼야 한다면, 민노당의 태도는 통일 논의를 위해 보편적 가치의 추구를 유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목적이 과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는 ‘민중의 해방과 민족의 통일,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갈 선봉’으로서 ‘희망찬 민중 세상’을 열어가고자 한다는 스스로의 강령에도 맞지 않는다.

권력의 3대 세습을 북한만의 특수 상황으로 치부하는 민노당의 침묵은 북한뿐만 아니라 국제 인권을 의식하고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과도 거리가 있다. 진보의 보편적 가치는 그런 의식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사회 속에 파급되어 평화통일의 힘을 수렴하는 것이라면 결국 이번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지지 기반을 잠식했다고 볼 수 있다. 정당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할 통일 너머의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장기적인 의지나 실천 전략의 부재로 보인다.

침묵을 결정한 당의 고민은 인정한다. 이제 종북이나 진보 논란은 논객에게나 맡기고, 정당으로서 대중의 눈높이에서 고민하는 한편, 통일에만 천착할 것이 아니라 급격히 올지도 모를 통일 이후의 그림도 지녀야 한다. 대중의 지지 없는 집단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과거 급격한 사회변동 속에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준비되지 못한 채 제구실을 못했던 70~80년대 의사 진보정당의 슬픈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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