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0.21 19:43
수정 : 2010.10.2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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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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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국정감사의 계절이 돌아왔다. 연일 부정과 비리의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흠을 찾기로는 복지분야의 비리도 빠지지 않는다.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부정수급한 억대자산가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는가 싶더니, 장애인과 도우미가 짜고 서비스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 복지전달체계의 허점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더 큰 결함은 비효율에 있다. 한편에서는 복지급여가 중복적으로 지원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위기상황에서도 복지혜택에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드러났다. 이렇듯 복지전달체계의 비효율과 비리는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 됐다. 그런 만큼 사태의 본말을 좀더 차분히 짚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복지전달체계는 일찍이 1960년 생활보호급여를 지급하면서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연륜만큼 발전이 이뤄지지는 못했다. 산업화 기간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던 정부는 복지서비스 공급 책임을 민간 복지기관에 맡기는 방식으로 재정지출을 줄이고자 하였다. 이렇게 지출 억제가 우선적 목표인 상태에서는 전달체계에 대한 투자도 기피되니, 복지전달체계는 저발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발육부진 상태의 전달체계가 벽에 부닥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복지서비스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부터이다. 점차 전달체계의 무능과 비효율이 쟁점으로 나타나자, 참여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서비스 전달 기능을 강화하는 개편을 추진하였다. 특히 전문인력을 크게 늘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000명에 불과하던 복지공무원 수가 참여정부 말에는 1만명을 넘게 되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개혁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여전히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복지공무원들은 급여를 단순 전달하는 구실 이상을 못하였다.
전달체계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 이명박 정부는 ‘수요자 중심의 효율적이고 투명한 복지전달체계 구축’을 내세웠다. 복지전산망의 연계를 강화하고 민간의 유사·중복사업에 대한 조정을 추진하였다. 또 공공전달체계를 고쳐 수요자 욕구에 맞춰 서비스를 연계·조정하는 기능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의 개혁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전달체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업무 증가에 맞추어 전문인력을 늘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의 이념에 매달려 공무원 정원을 동결하였고 재원 투자에 인색한 태도를 견지하였다. 결국 재원과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행정개편만을 하는 셈이니 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구시대의 관료적 규제에나 적용되어야 할 ‘작은 정부’ 논리에 묶여 공공전달체계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지금 복지환경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복지영역에서는 전통적으로 민간 비영리기관이 지배적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최근 노인요양 분야에서는 영리업체의 서비스가 고삐 풀린 듯이 늘었다. 또 여러 돌봄서비스 영역에서 바우처(서비스이용권) 방식의 수요자 재정지원이 늘었다. 복지서비스의 공급자와 수요자 관계에서 돈과 시장의 영향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복지영역에서의 시장 확대는 서비스 효율을 향상시킨다. 하지만 때로는 담합이나 과당경쟁으로 비리와 비효율을 낳고, 서비스 질 하락으로 이어진다. 최근 복지전달체계에서 거듭되는 혼탁은 이런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정부는 규제와 감독을 통해 시장의 부작용을 막으려는 적극적인 노력에 나서지 않고 있다.
성장제일주의에 눌려 어려운 유년기를 보낸 우리의 복지전달체계는 이제 다시 고비를 맞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복지서비스가 양적으로 늘고 다양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복지서비스를 관리하고 연계·조정하는 일이 정부의 주요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제 우리 정부도 사회서비스 국가로 발돋움을 서둘러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 정부는 먼저 ‘작은 정부’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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