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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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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승차를 ‘과잉복지’의 하나로 보는 시각은 그에게 국한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 그 시각을 ‘용기 있게’ 드러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따져보면, 지하철 무료승차나 무상급식과 같은 제도에 대해 수긍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실제 우리 사회에서 적지 않다. 정치적 성향에 관계없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재벌의 자식들에게도 국민의 돈으로 점심을 공짜로 먹여야 한다는 것에 약간이나마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느끼는 것은 무의식중에 이러한 ‘복지 프로그램’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일종의 시혜 혹은 ‘보살핌’으로 보는 인도주의적 시각이 있는 탓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라고 생각하는 이상,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에게까지 혜택을 베푸는 게 부당하다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무상급식 지지자들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그것은 그들의 무상급식 옹호 논리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대체로 그들의 논리는 가난한 아이들이 자기들만이 공짜 점심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면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에 근거해 있다.
물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교육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교육을 생각한다면 더욱 정확한 논리를 얘기할 필요가 있다. 즉, 무상급식이든 노인들 지하철 무료승차든 그것은 결코 약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가의 의무로서 시행해야 하는 제도임을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시민이 인간답게 위엄있는 삶을 영위할 ‘헌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민주국가의 존립 이유이다.
게다가 오늘날 국부(國富)란 어떤 개별 기업이나 특정 개인들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물론 개별 기업이나 개인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더 근본적으로 부를 생산하는 원천은 공동체 전체의 문화적 공통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체 전체 내에서 전승되고 쌓여온 지식·기술·철학·교양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예외없이 무조건적으로 그 부를 향유할 당연한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상급식이나 노인 지하철 무료승차 제도는 미약하나마 시민들에게 주는 일종의 배당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국부 창조에 공동으로 참여한 자격으로 받는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배당금의 경제 전체에 대한 기여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만열 교수는 노인들 지하철 무료승차에 드는 비용이 “노인들을 뒷방살이시켜 스트레스 등으로 생길 사회적 비용에 비하면 훨씬 적을 것”이라는 점에서 이 제도의 사회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것은 탁견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제로 지하철 공짜표가 서민들의 구매력 증대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을 것임에 틀림없다. 면제된 지하철 승차요금에 해당하는 돈은 동네가게를 버텨주는 데 사용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하철 공짜표라는 ‘배당금’은 서민경제와 궁극적으로 국민경제 전체의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것에 대한 면밀한 검토 후에 지하철 적자를 운위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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