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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26 21:26 수정 : 2010.10.26 21:26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편집장

버마 총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찌를 앞세운 민족민주동맹(NLD)이 485석 가운데 392석을 휩쓸며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가 그 결과를 뭉갠 채 오늘까지 왔으니, 꼭 20년 만이다.

근데 달아오르지 않는다. 유일한 야당인 민족민주동맹이 일찌감치 총선 보이콧을 선언해버려 시민이 선택권을 잃어버린 탓이다. 정확히 말하면 선택권은 있다. 보이콧이다. 원칙을 따지자면 군사독재의 불법성을 고발하는 민족민주동맹의 보이콧은 백번 옳고 시민들에게도 값진 선택권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전략도 전망도 내놓지 못한 민족민주동맹의 감상적 혁명주의다. 지난 20년 동안 ‘아웅산 수찌’만 외치며 정치력도 투쟁력도 보여주지 못했던 민족민주동맹은 정당과 혁명조직을 분간하지 못한 채 혁명적 순혈주의만 내세워 혼선을 빚었다. 결국 군부가 영구집권을 노린 이 중대한 총선 정국에서 내부 권력투쟁으로 적전분열상까지 보이고 말았다. 결과는 투쟁력이 받쳐주지 않는 선언적 보이콧으로 드러났다. 결국 시민의 선택권 박탈로 이어지고 만 꼴이다.

해서 보이콧을 놓고 ‘민주주의는 과정이고 방법일 뿐 윤리적 대상이 아니다’라는 해묵은 구절이 다시 튀어나오면서 민주진영에서도 말들이 많다. 그러나 국경민주혁명, 민족해방전선이나 재외 민주단체들도 모두 총선 보이콧에 동참한 마당이다.

민족민주동맹에 앞서 총선 보이콧을 선언한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탄 케는 “보이콧이 항쟁이 아닐 바에야 차라리 민족민주동맹이 총선에 뛰어들어 시민들에게 정치학습 기회라도 줘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망명 언론인 아웅 나잉은 “보이콧이 군부와 민주세력의 대결로만 치달아 오히려 시민을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랭군 사회운동가 윈 마웅도 “이번 총선이 민주주의가 아니지만 군인정권을 깨는 첫걸음으로 삼아야 했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들은 모두 20년 동안 막혔던 숨통을 뚫어보자는 이른바 ‘1인치 전진론’을 내세워 대안 없는 보이콧을 나무랐다.

민주세력이 빠진 이번 총선은 군인들 판이다. 민간으로 위장한 군인정당인 연방단결개발당(USDP)은 1163개 선거구 가운데 1157개에 후보를 내 싹쓸이 판을 닦아 놓았다. 또다른 군인대리정당인 민족통일당(NUP)이 975개 선거구에 후보를 내 겹장까지 쳐놓았다. 대항마가 없다. 민족민주동맹에서 떨어져 나온 민족민주세력당(NDF)이 160개 선거구에 후보를 냈지만 시민들은 오히려 달갑잖게 여긴다. 나머지 34개 군소정당 가운데도 22개 정당이 샨민족민주당(SNDP)처럼 군인과 휴전협정을 맺은 소수민족 지분만 지녀 대세와 상관없다.

결과도 뻔하다. 2008년 신헌법 국민투표에서 군사정권이 99% 참여율과 92.4% 찬성 결과를 내놓았던 걸 보면 이번 총선은 기록 경신 여부만 남았다. 하원 격인 인민회의 440석과 상원 격인 민족회의 224석을 포함해 지역회의 900석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이미 군인들은 신헌법에 따라 군부 몫 25%에 해당하는 인민회의 110석과 민족회의 56석에다 지역회의 256석을 확보해 두었다. 이건 만약 민족민주동맹이 이번 선거에 참여해서 의석 90%를 얻더라도 결국 3분의 2 개헌선을 넘지 못하도록 빗장까지 쳐둔 결과다.

그러니 11월7일 총선이 50년 가까이 작동하지 않았던 시민정치를 복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는 없다. 열흘 뒤면 군인들이 승전보를 울리며 민간복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민족민주동맹은 그 총선 결과를 불법으로 선언할 것이다. 시민들은 희망을 접고 또 기약 없는 먼길을 가게 될 것이다. 결국 선거민주주의의 한계만 또렷이 드러내며 민족민주동맹의 보이콧은 두고두고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물소 두 마리가 싸우면 풀만 짓밟히고 만다.’ 이건 버마 속담인데, 이번 총선을 보는 느낌이 딱 그 짝이다.


정문태 국제분쟁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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