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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29 20:43 수정 : 2010.10.29 20:43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며칠 전 인터넷 뉴스를 훑어보던 중 하나의 기사 제목에 눈길이 가 멎었습니다. 윤여준 전 의원이 방송에서, 4대강 사업에 대해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박근혜 의원에게 촉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지인들과 똑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고 난 바로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널리 서로 통하나 보다, 혼잣말을 했습니다.

박근혜 의원은 흔히 ‘전 대표’라고 불립니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분이기도 합니다만, 박 의원이 단순한 의원 이상의 존재라고 여기는 상당수 사람들의 태도가 여기 반영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풍자적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지극한 정성을 담아 박 의원을 공주님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여러모로 박 의원은 특이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의 정치인이니 그럴밖에요.

박 의원은 한동안 수첩공주라고 불렸습니다. 내용 없이 부친의 후광과 이미지만으로 정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뒤에 깔려 있었습니다. 단아한 외모와 간결한 몇 마디 말만으로도 수백만의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정치인 박근혜에게 ‘그것은 거품일 뿐’이라는 비판을 낳는 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고정관념은 박 의원이 세종시 논란에서 원안(+알파) 고수론을 견지하면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어떤 입장의 사람이건, 박 의원이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복지에 관한 박 의원의 발언이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중입니다. 박 의원의 이러한 행보는 진보세력의 기반을 잠식할 수 있다고 보는 분석가도 있고, 실제로 호남에서 박 의원의 지지도가 치솟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의문스러워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논란과 갈등을 낳고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연간 몇십조의 예산을 들이고 자연의 거대한 변형을 초래하는 ‘4대강 사업’입니다. 박 의원은 원래 대운하 사업에는 반대의 뜻을 밝혔고, 이명박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추진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실은 위장된 대운하 사업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대운하이건 아니건, 이 사업의 졸속추진으로 초래되는 생명 파괴, 농업 파괴, 문화·역사유산 파괴가 두려움을 낳고 있습니다. 반대자가 목숨을 바쳐 싸우면 웬만한 일은 재검토되거나 철회되곤 합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은 문수 스님이 4대강 사업 철회를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소신공양까지 했음에도 강행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죽음으로도 막지 못하는, 지고의 가치가 여기 있는 것일까요.

이제, 내년도 예산에 대한 국회의 마지막 결정이 남아 있습니다. 4대강 사업 예산이 정부안대로 통과된다면 4대강과 그 유역의 파괴는 돌이킬 수 없어집니다. 이미 상당한 파괴가 진행되었습니다만, 작은 악이 행해졌다고 해서 더 큰 악마저 용납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4대강 사업 예산의 향배를 숨죽이며 주시하고 있습니다. 박 의원께서는 4대강 사업 현장에 가보셨습니까? 한 번 가보십시오. 그곳이야말로 한국 정치의 가장 적나라한 현장입니다. 많은 학생, 시민, 종교인들이 현지를 둘러보고 귀가하곤 합니다. 별생각 없이 갔던 사람들도 이 사업이 어떠한 것인지 분명히 알게 되고, 충격을 받게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현직 대통령을 제외한 그 누구보다 큰 세력을 가진,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박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혀야 하지 않습니까? 윤여준 전 의원은 합리적 보수를 대표하는 인사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분이 물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과 4대강 유역의 뭇 삶들이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박 의원이 답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대운하 사업을 반대했던 박 의원은 위장된 대운하 사업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하여, 국회의 내년도 예산 결정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고자 하십니까?

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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