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11.01 21:05 수정 : 2010.11.02 09:02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1970년 11월13일 한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하였다. 한 불꽃이 한 공동체를 이토록 흔들어 놓은 적도, 한 사회의 본질을 이토록 압축적으로 드러낸 적도 거의 없었다.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에 따르면 전태일의 불꽃은 ‘인간 선언’이었다. ‘인간’ 선언을 위해 ‘인간으로서 가장 소중한’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결단을 현실에서 요구받는다는 것은, 순교를 위한 종교적 희생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종교인 강원용은 전태일 분신 한달 전에 “인간생활 전반에 걸친 비인간화 현상은 이 시대, 특히 우리가 사는 한국의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요 기본적인 문제”라며, 한국 사회의 ‘인간화’의 긴박성을 호소한다. 세계의 교육·정치·사회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같은 해 출간된 <페다고지>에서 파울루 프레이리는 “인간화와 비인간화가 실제로 택일해야 할 양자이면서도 오직 전자만이 인간의 소명”이라며 “인간화는 인간의 핵심 문제”라고 선언한다.

전태일의 인간 선언, 그리고 강원용과 프레이리의 인간화 선언 40돌을 맞아 오늘 우리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돌아본다. 그 시기 동안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공을 통해 “인간이 만든 기적”(man-made-miracle)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지디피(GDP·국내총생산), 수출, 1인당 지디피, 외환보유, 건설, 첨단기술, 올림픽과 월드컵 개최, 그리고 이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까지…. 한국이 이룬 물질적 외면적 성취는 실로 눈부셨다. 우린 이것을 충분히 자랑해왔다.

그러나 그 기적은 “인간이 만든 재앙”(man-made-disaster)과 함께한 것이었다. 40년 전의 인간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린 이 ‘재앙’을 ‘기적’에 대한 자랑만큼 깊이 성찰하지 않아왔다. ‘물질적 기적’과 ‘인간적 재앙’이 놀랄 정도로 비례하여 증가하고 있음에도. 즉 ‘물질적 기적’이 늘어갈수록 ‘인간적 재앙’도 깊어지고 있다. 물론 ‘재앙’의 순위와 수준 역시 ‘기적’ 이상으로 세계적이며 인류사적이다.

자살률 세계 최고와 출산율 세계 최저를 유일하게 동시에 기록한 끔찍한 지표를 포함해 비정규직, 여성 권한, 자영업 비중과 폐업, 노동시간, 사교육 비중과 비율·격차, 부모 지위와 부의 세습 정도, 부동산 불평등, 정부의 공공사회지출 등은 지금 모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최악’, ‘최저’, ‘최장’ ‘최하’ 기록을 보유하고 있거나, 또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몇 배 더 나쁘다. 인간적 눈물과 고통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인간적 지표들의 이 놀라운 공통성과 일관성은 한국 사회의 반인간성과 반생명성, 반보편성과 반세계성을 웅변한다. 이 집합 통계들은 인간 문제에 관한 한 인류의 보편 경로에서 우리 공동체가 너무도 멀리 이탈하고 있음을 증거한다.

칸트는 일찍이 “국가의 번영은 국민들의 불행과 병행하여 커가고 있다”는 잠언을 남겼다. 이제 ‘국가적’ 기적을 자랑하기보다 ‘국민적’ 재앙을 위로하고 치료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데 정부·언론·대학·종교 모두 혼신을 다하자. 우린 인간이 만든 재앙들을 꼭 광정해야 한다. 특히 전태일과 <페다고지>로 인간과 세계에 눈을 떴던 70~80 세대들, 486 세대들은 이제 역사 앞에 답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든 지금 이 사회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 만한 인간적이고 정의로운 공동체인지를.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진학에 취업경쟁에 생존위협에 자살벼랑에 내몰린 수많은 비정규직과 자영업자들과 청년학생들과 자녀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영혼의 분신을 통해, 육신이 타는 아픔으로 저들 삶의 핍진과 고단함을 함께 껴안고 해결하려 분투해야 한다.

민주화의 깃발은 이제 인간화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모두 어디에 서 있건, 성직자이건, 학자이건, 언론인이건, 시민운동가이건, 대통령이건, 장관이건, 국회의원이건, 관료이건 바로 그 자리에서 숙연히 묻자. 무엇이 과연 이 참혹한 반인간적 사회를 광정하기 위한 인간화의 길인지를.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