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09 20:29
수정 : 2010.11.0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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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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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소조항이 담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의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진행중이다. 한-미 쇠고기 수입 문제와 자동차 관련 사항이 주요 의제인 양 말해진다. 정부는 선심 쓰듯이 쇠고기 문제를 사수한다고 말하고, 여당인 한나라당도 자동차는 미국 요구를 검토할 수 있지만 쇠고기엔 양보 없다며 생색을 내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와의 회의 후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쟁점 해결을 위한 통상장관 회의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소위 ‘쇠고기 고수-자동차 양보’라는 틀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 정부와 여권이 정권 실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면서 국민을 호도하려는 치졸한 행태다. 한국의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는 근본적으로 당장 논의해야 하는 사안이며, 여권이 ‘쇠고기 고수-자동차 양보’라는 식으로 빅딜 분위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전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연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쇠고기 협상을 하지 않으면서 이를 쇠고기 고수라고 말하는 정부 주장은 결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국민을 속이고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타결되어 있는 미국 쇠고기 수입조건은 현 정부가 2008년에 미국의 선물이라며 받아들인, 국제적으로 결코 수용될 수 없는 완전개방 수준이다. 그렇기에 당시 촛불로 상징되는 대규모 국민 저항 사태가 발생했다. 그 촛불 덕분에 그나마 현재는 한시적으로 30개월 미만의 미국 쇠고기가 수입되고 있다. 한시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내장과 30개월 이상의 쇠고기가 수입되기 위해서는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조건부 제한에 한·미 양쪽이 합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 쇠고기 수입은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민의 신뢰가 회복되면’ 언제고 촛불사태 이전의 완전개방 상태로 되는 것이 현황이다. 더욱이 촛불 이후 개정된 국내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 미국은 개정된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별 예외 국가다.
이미 더 개방할 것도 없이 문호를 다 열어준 상태에서 한국 정부가 마치 최선을 다해 현재 상황을 고수한다는 식의 홍보성 발언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굳이 고수할 것이 있다면 현재의 한시적 수입조건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양쪽의 합의처럼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한국민의 신뢰 회복 여부에 달렸다. 따라서 한국민의 신뢰를 협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지금 상황은 결코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쇠고기를 고수하고 대신 자동차를 양보할 수 있다는 여권 입장은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2008년도에 맺은 일방적 졸속 협상도 개선하지 않겠다는 것일 뿐이다.
촛불의 분노가 한창일 때 정부와 여당은 주변국이 모두 한국과 같은 조건으로 수입하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거의 만 3년이 지난 지금 정부의 주장처럼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이미 체결한 멕시코도 미국과 30개월 미만 쇠고기로 수입 타결했다. 이를 고려할 때, 촛불 당시 정부의 주장이 틀린다면 언제고 미국과 재협상하겠다던 여야 정당 대표의 합의문을 이행하여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킬 때이다. 그렇기에 이번 에프티에이 협상에서 쇠고기 논의를 안 하는 것은 결코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는 국민을 기만하면서 미국을 도와주려는 행태이다.
따라서 우리가 미국과 맺고 있는 황당한 쇠고기 수입조건에 대한 재협상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이를 통해 자동차에서도 유리하게 협상하려는 의지도 없이 미국과 쇠고기 협상은 안 하겠다면서 생색을 내는 것은 정치사기극이다. 국민과의 약속은 저버린 채 밀실협상으로 강대국에 끌려다니며 마치 빅딜로 자동차 건을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정부는 말장난을 한다. 앞으로 에프티에이의 독소조항이 제거되기는커녕 더욱더 미국 요구를 수용한 합의문이 예상되어 걱정될 뿐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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