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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16 21:00 수정 : 2010.11.16 21:00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에 대해 논란도 많았지만, 나는 비즈니스 서밋(B20)이 열린다는 사실에 내심 기대를 갖고 있었다. 주요국 경영자들이 금융위기 이전의 경영 관행에서 탈피하겠다는 반성이라도 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회와 호흡하는 미래형 경영에 나서는 초석 정도는 다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G20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반성과 공동 대응을 위해 2008년 시작됐다. 그 틀 안에서의 첫 비즈니스 서밋이니 반성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을까 싶었다. 4대 의제 중 하나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 제고’가 포함된 것도 매우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결과는 실망이다. 기업이 세계가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지 알릴 기회를 날렸다. 한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기회도 함께 날렸다.

무엇보다도 이번 비즈니스 서밋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을 성찰하지 않고 있다. 위기의 본질은 탐욕에 기초한 시장 질서다. 위기의 원인은 그 질서를 받아들이고 부추긴 정부와 기업과 금융에 있다. 주요국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제의 새 틀을 짜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해소될 수 없는 문제다. 책임에 기초한 질서로 고쳐야만 위기의 원인이 사라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문제가 빠진 게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번에 모인 기업가들은 대부분 내로라하는 글로벌 대기업의 경영자다. 대기업이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중소기업과 그 임직원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만 나열한 뒤, 대기업 스스로의 역할은 보조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말았다.

대·중소기업 상생 과제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는 사실 한국에 특수한 것이다. 상생 과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성명에 반영했다면, 한국 기업의 독특한 책임성을 세계에 알릴 수도 있었다.

일자리 문제에서도 현실을 직면하지 않았다. 대기업이 수출을 늘려 성장한다고, 기술 혁신이 일어난다고, 예비취업자 교육 잘 시킨다고 자동으로 괜찮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안다. 중소기업, 비영리부문, 사회적기업 등 글로벌 대기업 경영의 틀 바깥에서의 대안적 일자리 창출에 대한 지원을 적극적으로 언급했다면 그나마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을 것이다. 이런 대안을 이미 고민하고 있는 한국 기업도 있을 텐데 아쉽다.

전반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유엔에서 기존에 논의되던 수준보다 상당히 후퇴한 모습이다. 심지어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에 표현된 것보다도 뒤처진다. 인권, 노동, 반부패 같은 유엔글로벌콤팩트의 주요 의제에 대한 인식도 사라진 모양새다.

이번 비즈니스 서밋은 컨설팅회사 매킨지가 맡아서 준비했다고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경영의 패러다임을 세우고 이끌었던 회사다. 그들이 준비한 포럼에서 옛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결론이 나온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근본적 성찰을 하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을 하지 않는 한 근본적 해법은 나올 수 없다.


지금 기업이 맞닥뜨린 문제를 정면으로 성찰하려면, 적어도 단기적 이윤 극대화만 추구하느라 소비자와 노동과 환경을 생각하지 못했던 원인을 성찰했어야 한다. 성장해도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구조를 인정했어야 한다. 소비자, 노동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 또는 기여하는 논의의 틀을 가졌어야 한다. 그런 서밋을 한국이 주관했다면, 한국 기업의 ‘격’이 한층 높아졌을 것이다.

스무 나라 기업가들은 또 만난다고 한다. 내년 프랑스에서다. 마음이 아프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의장국일 때 하지 못한 기업의 진짜 사회적 책임 이야기를, 프랑스에서는 꼭 하시라고. 그러지 않으려면, 다시 모이지도 마시라고.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www.facebook.com/lee.wonjae.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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