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11.19 20:52 수정 : 2010.11.19 20:52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슈퍼스타 K2>의 생명력이 질기다. 지난 몇 달간 안방의 시선을 휘어잡더니, 요즘은 우승자 허각이 공정사회의 상징처럼 부각된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꿈과 희망의 상징’,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공정사회의 대표적 사례’,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은 ‘평등과 공정에 대한 국민적 열망의 표현’, 이재오 특임장관은 ‘출근길에 만나는 포장마차 아주머니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로 허각을 부각시켰다.

이들이 허각을 내세워 하고 싶은 말은 뭘까? 한국 사회가 현재 공정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 한국 사회가 공정해져야 한다는 염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일까? 그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허각은 공정사회의 물증도 아니고, <슈퍼스타 K2>는 공정사회의 모델이 될 수도 없을 테니까.

<슈퍼스타 K2>에서 공정사회의 모델을 보는 이는 중졸의 환풍기 수리공이 우승한 것을 공정성의 물증처럼 들이민다. 그리고 전문가 심사와 대중 참여를 조합한 평가방식을 절차적 공정성의 상징처럼 부각시킨다. 가진 거라곤 노래 실력밖에 없는 허각이 우승한 건 공정한 평가의 증거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 주장은 타당한가? 아마 허각이 환풍기 다는 실력으로 신일선풍기 설치담당 이사로 입사했다면 그렇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 탄생의 배후에 성공신화를 깔아야 시청률이 오르는 오디션 프로에서 ‘타고난 가창력+중졸 학력’은 약자의 정체성이 아니라 특화된 스펙에 가깝다. 그래서 허각의 이력은 그 자체로 평가의 공정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긴 어렵다. 허각은 위안은 돼도 대안은 못 된다.

그러면 전문가 심사와 대중 투표를 조합한 평가방식은 공정한가? 적어도 참가자가 동등한 조건으로 투명하게 평가받았다는 점에서 ‘공평함’은 성취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보상체계와 탈락자 색출을 통한 가혹한 토너먼트식 경쟁방식에 134만명의 참가자가 2억원의 상금을 놓고 경합한 프로그램의 진행방식은 노력과 성과의 정당한 분배란 관점에서 정당한가?

즉 방송사가 설정한 방송사와 참가자 사이에 존재하는 계약의 내용은 정당한가? <슈퍼스타 K2> 전체 참가자 134만명의 일당을 하루 만원 잡으면 134억이다. 우승상금은 2억이다. 1인당 기대금액은 수백원 남짓이다. 물론 매우 다양한 부대적 가치가 참가자에게 돌아가겠지만, 집단 전체로 보면 참가자 절대다수는 손해 보고 방송사는 엄청난 이득을 보는 ‘하우스 불패의 로또 구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기업인 방송사가 프로그램의 설정에 대해 참가자와 토론할 의무는 전혀 없다. 선택은 철저한 참가자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슈퍼스타 K2>가 공정사회의 모델, 즉 부와 권리를 분배하는 국가적 차원의 틀이 되는 상황을 가정하면 문제는 달라진다. 주권자인 시민은 부와 권리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방식 자체에 의견을 개진할 권리, 주어진 경쟁방식의 정당성을 질문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권리를 삭제하고 일방적으로 결정된 경쟁방식에서 경쟁자들끼리의 공평함만 문제삼는다면 그건 반쪽짜리 절차적 공정성일 뿐이다.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학생 10명에게 교사가 10대씩 똑같이 몽둥이를 휘둘렀다면 공평한 조처이다. 하지만 정당한 조처는 아니다. (과도한) 체벌은 부당하기 때문이다. 공정성은 공평함과 정당함을 요구한다. 공정성을 공평함으로 축소하는 것은 권리의 경계를 모르는 두 유형의 인간, 노예와 폭군의 습성이다. 노예는 부당한 공평함에 안심하고 폭군은 거기서 정당성을 편취한다. 온전한 시민은 먼저 정당성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공평함을 비교해야 한다.


정치철학 개론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수십만부나 팔린 나라에서 반쪽짜리 절차적 공정성을 공정사회의 모델로 벤치마킹하자는 얘기가 스스럼없이 나온다?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일관된 주장은 절차적 공정성만으로 정의는 어림없다는 것 아닌가.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