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22 20:29
수정 : 2010.11.22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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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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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화’ 문제를 다룬 지난 ‘세상읽기’에 대해 한 독자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다. 한국전쟁 참전 60돌을 맞은 중국 시진핑 국가부주석의 발언으로 내외 논란이 치열한데 왜 다루지 않느냐,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정리를 해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책이었다.
필자는 현재의 한-중 관계에 비추어 참전용사를 향한 내부 발언을 둘러싼 역사적 외교적 논란이 전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한국 정부와 사회의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몇몇 기고 요청을 거절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발언을 계기로 한국전쟁 문제는, 국제법적 외교적 문제를 정밀하게 검토하여 향후의 한-중 관계 발전, 그리고 통일 문제를 포함한 한국 문제 해결, 한국의 국가전략 선택의 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 부주석이 중국의 차기 최고지도자라는 점이다. 따라서 ‘과거의’ 참전을 활용한 ‘현재의’ 발언은 ‘미래 시진핑 시대의’ 한-중 관계, 북-중 관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다. 그의 발언은 시진핑 시대에도 ‘경제’에서는 한-중 협력을 지속하되 ‘안보’에서는 북-중 혈맹이 불변이라는 의사표시이다. 게다가 후진타오 현 주석은 북한의 차기 지도부를 ‘공식’ 초청하여 3대 세습을 인정하는 동시에 도와주고 있다. 3대 세습에 대한 전세계의 반응과는 정반대다. 후 주석의 공식 초청과 시 부주석의 발언은 미래 중국의 글로벌 전략, 동아시아 전략, 한반도 전략에서 북한 문제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둘째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중국의 대한정책 일관성이다. 정부 초기 한-미 동맹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포함해 북핵 문제, 천안함 사건, 후계 문제, 이번 한국전쟁 언급에 이르는 동안 한반도 군사·통일·평화 문제에 대한 중국의 발언과 관여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한반도 안정 지지, 비핵화, 평화유지라는 공식적인 외교정책과 국익 추구, 남북 동시 활용 전략 사이에 중국의 원칙과 방향이 확고하게 결정됐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 양대 강국(G2)으로의 부상에 따른 대미·대한 자신감이 묻어난다.
끝으로 국제법적 문제이다. 적어도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에 관한 한 중국과 북한은 공식적인 서명 당사자이지만 미국과 한국은 아니다. 자유진영은 유엔이 서명 당사자이다. 게다가 중국과 북한의 유엔 가입 때도 이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유엔 회원국’ 중국과 북한은 ‘유엔’과 정전 상태에 놓여 있다. 나아가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기도 하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유엔과 정전 상태에 놓여 있는 엄청난 모순인 것이다.
한국과 중국 역시 1992년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과거 적대행위에 대해 역사적·법률적으로 전혀 정리하지 않았다. 70년대 미국과 중국의 수교 역시 동일했다. 하여 한국과 미국도 중국과는 공식적인 외교관계와 사실상의 정전관계라는 이중 상황에 놓여 있다. 중국은 유엔 가입, 미-중 수교, 한-중 수교라는 결정적 계기에 한번도 한국전쟁에 대해 정리하지 않았고, 정리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사태의 국제법적 기원은 정전협정 체결 당시 미국과 한국의 선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유엔(군)의 집단안전보장행위라는 참전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유엔이 남한 안전을 보장한다는 점을 확인하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 자격으로 서명했다. 또 이승만 대통령은 ‘괴뢰’ 북한과 ‘정부’ 대한민국의 대등한 서명, 서명을 통한 정전수용=분단인정=(북진)통일과제 포기의 공식화, 남북 동시 서명에 따른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인한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과 군사원조 약화 우려라는 세 가지 이유로 서명을 거부했다. 전쟁의 실질적 당사자인 한국과 미국의 선택은 정전협정의 국제법적 당사자 문제를 초래했던 것이다.
중국의 양대 강국으로서의 위상이 더욱 강화될 시진핑 시대를 앞두고 우리는 한국전쟁, 정전협정, 시 부주석 발언, 김정은 초청, 북-중 관계 등을 깊이 사려한 토대 위에 외교적으로는 물론 국제법적으로도 시진핑 시대의 한-중 관계와 북한·통일 문제에 세심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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