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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25 21:35 수정 : 2010.11.25 21:35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나는 <뉴욕 타임스>의 저명한 기자인 토머스 프리드먼의 열렬한 팬이다. 그의 칼럼이 나오는 날이면 마치 연인과의 데이트 날처럼 가슴이 설렌다. 아이패드를 클릭하면 그는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는 마치 카페에서 대화하듯이 속삭이며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로 자석처럼 날 끌어들인다. 그는 내가 전세계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저 칼럼 취재를 위해 당장 외국 어디론가 떠나고 싶으면 <뉴욕 타임스> 편집국은 그에게 사유를 묻지도 않고 작별인사를 건넨다. 비행기 안에서 그를 알아보는 전세계 시민들은 어제 그의 칼럼에 대해 친근하게 말을 건네고 공항 활주로에는 현지 고위 관계자들이 줄을 선다.

그가 탁월한 글을 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세운 칼럼 집필 방향에 있다. 그는 때로는 ‘아, 그런 관점이 있구나, 난 몰랐네!’ 하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글도 즐겨 쓴다고 한다. 즉 새로운 지적 세계로의 초대이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가장 만족하는 최상급의 글의 방향은 다른 곳에 있다. 그는 시민들이 가슴속에서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을 명료히 표현하지 못할 때 이를 글로 형상화하는 것을 특히 좋아한다.

하지만 난 그의 열렬한 팬이지만 바로 이러한 방향이 그를 잘못된 칼럼니스트의 길로도 이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지만 동시에 가장 크게 실망한 그의 칼럼은 ‘너보다 내가 더 미쳤거든’이란 9·11 테러 직후의 글이다. 이 글에서 그는 부시 대통령의 충동적이면서 확전을 불사하는 대응에 대해 거칠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바로 그 이유로 그는 당시 부시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지지하였다. 즉 미국이 테러리스트보다 더 미친 사람으로 행동해야 그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광인 이론’이었다. 당시 이 칼럼은 미국 시민들의 가슴속 느낌을 기막히게 표현해내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 글은 읽는 맛은 기막혔지만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되는 불량식품이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확전을 불사하는 대응이야말로 오사마 빈라덴이 미국을 망가뜨리기 위한 의도에 가장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모두가 알듯이 미국은 9·11 테러에 충동적으로 대응하다가 퇴조의 사이클을 가속화시키고 이후 집권한 버락 오바마는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 집권 후 그는 다시 나를 실망시키고 말았다. 아프간 전쟁에서 수렁에 빠진 오바마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그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점심에 초대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외부 전쟁보다 미국 국내 이슈에만 집중하자고 오찬장에서 대통령을 비판하고 그 이후 강한 어조의 비판적 칼럼으로 백악관을 곤혹스럽게 했다. 그는 다시 솜씨 있는 필력으로 시민들이 본능적으로 고립주의적 기조에 빠지는 마음을 글로 대변해낸 것이다. 하지만 지금 국제관계에서 손을 갑자기 떼는 것이 과연 제국의 입장에서 지혜로운지는 대단히 회의적이다.

오늘날 아이패드의 시대에서 지식인의 독점 정보력도 사라지고 모두가 집단 지성인 시대로 돌변했다. 하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지식인의 역할은 당대의 꿈틀거리는 본능이 무엇이라 명하든 이를 의심하고 이후 다가올 시대에 대해 통찰하고 경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갑자기 프리드먼이 떠오른 것은 올해부터 2012년까지 한반도의 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내가 존경하는 한 지식인은 천안함 사건 직후 올해 안에 심각한 국지전이 발생할 것 같다고 몹시 우려하며 백방으로 지식을 구한 적이 있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난 당시 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지혜로운 칼럼을 쓰지도 못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난 그저 충동적 모험주의와 이후 극단적 고립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는 프리드먼과 같은 지식인이 되지는 않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멀리 혜안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이 많을 때 배트맨 영화인 <다크 나이트>의 조커 같은 북한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두렵게 생각하게 할 수 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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