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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30 19:46 수정 : 2010.11.30 19:51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국내 재벌의 성공 신화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는 젊은이들의 꿈이기도 하다. 국제적으로 한국이 잘사는 나라로 여겨지는 것도 재벌 기업들의 수출로 벌어들이는 돈 때문이다. 국내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주장처럼 막대한 순이익을 내는 국내 재벌이 무너진다면 한국은 대내외적으로도 내세울 것이 별로 없다. 관련 하청업체의 파산을 포함해 거리엔 실업자도 넘칠 것 같다.

재벌의 이런 존재감 덕분에 국내에서 이들은 국가로부터 당당하게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들의 탈세와 불법은 당연하다 못해 국가가 뒷정리마저 해준다. 각종 특혜와 솜사탕 면죄부는 물론 대통령마저 나서서 특별사면까지 하니 이들 재벌은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사회의 기본 틀마저 뛰어넘는다. 물론 올림픽 유치나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통한 국격과 국익을 위해서 당연할지도 모른다.

물론 재벌도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우아하고 훌륭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막강한 공식 법조팀을 유지하고 있고, 비공식 돈 살포 체제를 갖추어 자신들의 껌값 정도는 언론을 포함해 입법, 사법, 행정 등 국내 모든 영역에 언제고 던질 줄 안다. 또 최근 개발된 상품으로는 원하지 않는 이에게 강매한 사례지만 죄인의 곤장을 대신 맞아주는 조선시대의 매품팔이(代杖) 변형으로 보이는 새로운 불법직종도 있다. 이들의 주장처럼 넘치는 부가 밑으로 흘러내려 가난한 이들의 일자리를 창출한 셈이다.

그러나 재벌이 향유하는 삶과 위치, 그리고 이들의 껌값에 영혼을 팔고 있는 주변 떨거지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힘인 돈의 근원은 국가도 아니고 이들의 조직도 아니며, 더욱이 이들의 능력도 아니다. 그것은 이들이 딛고 서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다. 이들의 노력과 희생 없이 재벌은 존재할 수 없다. 재벌은 기업 산하의 하청업체와 비정규 불법파견 노동자들의 노동 용역으로 이익을 만들고, 기업 경영진이나 정규직 역시 이 땅의 800만 비정규직이 겪는 간접고용과 변형근로의 고달픔과 서러움으로 유지된다. 따라서 재벌들의 고상하고 아름다운 삶이란 노동 용역으로 발생한 사측의 막대한 순이익을 주주나 고용인에게 정당히 돌려주기보다는 사내 유보금 명목으로 집안 재산증식이나 떡값용 쌈짓돈으로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요즘 연평도 포성으로 덮고 싶어하는, 작지만 커다란 외침이 들린다. 세계적인 도요타를 추월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국제기업인 현대자동차에서 들리는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박한 외침이다. 용역회사의 중간착취에 시달리며 하루에 12시간 이상 10년을 일해도 여전히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는 비정규직 가장의 힘든 목소리다. 이들이 만들어낸 몇조원 수준의 회사 순이익 일부만 떼어도 이들의 요구인 정규직 전환을 할 수 있지만, 대법원 판결마저 무시한 회사 쪽은 오히려 법대로 하자며 검찰과 경찰을 동원하여 이들을 위협하며 양보를 요구한다.

사문화된 노동법과 더불어 노동자의 땀과 눈물에 감사하지 않고,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여 사회공동체적 가치를 무시하는 기업은 결코 유지되지 못한다. 소외되어 꿈을 잃고 절망한 노동자로부터 건강한 기업은 나올 수 없다. 이제 노동자 혁명을 외칠 순진한 이가 없듯이, 또한 노동자의 등에 빨대를 꽂아 그 땀과 눈물과 피와 꿈을 착취해 자신의 배를 채우는 재벌기업 문화도 끝나야 한다.

노동자와 사측이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더는 값싼 욕망의 만족을 위해 젊은이들이 재벌들 껌값에 꿈을 팔지 않도록 하자. 재벌이 존경받고 오래 유지되고 싶다면 기업과 노동자가 서로 상생하기 위해서라도 가난한 비정규직이 아니라 막대한 순이익을 내는 사측의 양보가 분명히 필요하다. 최근 어느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평범한 젊은이의 ‘구속하지 않는 자유와 공동체와 정의가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일까’라는 고민이 너와 나의 젊은 시절의 고민이 아니겠는가.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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