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13 20:20
수정 : 2010.12.1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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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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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23일 남한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포격사건은 충격적이다. 한국전쟁 60주년, 탈냉전 20년을 경과하는 시점에 감행된 북한의 포격은 오늘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한반도를 압축적으로 상징한다. 이번 포격은 정전협정과 유엔헌장은 물론 남북의 각종 합의를 정면 위반함과 동시에 ‘평시에’ ‘비무장 민간인을’ ‘비교전지역에서’ ‘고의 공격으로’ 살상하였다는 점에서 명백히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해당한다.
먼저 연평도 포격은 북한의 본질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1948년 건국 이래 북한의 국가 성격은 한마디로 군사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일제 식민시기 김일성, 김책, 최용건, 강건을 포함한 군인들이 건국 핵심으로 참여한 이래 북한은 지금까지 군사 갈등, 이념, 정책, 담론, 인물, 예산배정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군사국가의 본질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특히 정권의 탄생과 강화의 계기는 모두 군사주의와 군사정책을 통해서였다. 김일성은 급진군사주의와 무력강화·한국전쟁을 통해 소련으로부터 정권을 이양받고 구축·강화하였다. 김정일은 군사모험주의와 대남 군사공세 국면(1·21 사태, 푸에블로호 사건, 울진·삼척 침투)에서 등장하고, 북핵 위기와 선군주의를 통해 권력 이양 및 강화 과정을 밟았다. 김정은 역시 천안함 사태, 고농축 우라늄 핵프로그램, 연평도 포격의 와중에 등장과 권력 이양을 시도하고 있다. 이 세 계기는, 내부 목적을 위해 북한이 남북관계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남한은 이런 북한을 능숙하게 다루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공격 책임을 늘 남한에 전가하는 ‘진실의 부정’ 역시 똑같다. 대남 선제공격이 밝혀지는 것은 북한엔 지도자 및 체제의 기원·등장·유지 요인이 조작에서 진실로, 신화에서 현실로 전변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은 허위의 북한 권력엔 가장 고통스런 통과절차인 것이다.
연평도 포격은 남한의 현실도 그대로 드러내주었다. 무엇보다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최초 군사대응의 지연과 혼선, 최고지도자의 사태인식과 발언(의 혼란한 번복), 청와대와 군·정보기관의 정보 인지·보고와 책임 공방, 대응공격의 효과성 논란은, 초기 대응이 가장 중요한 현대 군사작전에서 국가안보와 국민 생명 보호의 위기의식을 갖게 하고도 남았다. 대통령·군·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개성공단 민간인 억류, 천안함 폭침으로부터, 매번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국민 생명 보호를 위해 전혀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가 경제의 아이엠에프 위기를 초래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안보의 아이엠에프 위기를 초래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서울에서 포격사태가 발생했을 경우의 피해를 상상하면 충분하다. 사태 이후 경제와 안보에서의 와이에스(YS)와 엠비(MB) 정부의 일방적인 대미의존 현상도 동일하다.
특히 이번 사태는 국가공동체에서 ‘시이오(CEO) 대통령’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보여준다. 국가의 안보·외교·복지·교육·예산배분과 같은 공공부문을 다루어보지 않은 기업 출신의 인물에게 국가를 맡기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일상의 시기보다 난국에 지도자로서의 덕목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 율곡은 특별히 외교와 안보 부문에서 그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론>에서 군사부문에서 지도자가 결단을 미루며 애매한 결정과 지시를 내리는 것은 국가활동에 아주 유해하다고 거듭 경고한다.
국가운영에서 직관과 결단이 가장 긴요한 순간은, 일상의 정책결정이 아니라, 국민생명과 국가안위가 걸린 군사와 안보 부문이다. 소대 규모의 도전은 소대로, 포격은 포격으로 ‘초전에’ 최소 피해로 제압할 때에 군사능력의 탁월성은 인정된다. 그러나 초전의 무능으로 인해 포격에 폭격으로, 전투에 전쟁으로 대응하며 대규모 인명피해와 함께 승전하는 것은 결코 현책이 아니다. 확전은 초기 무능과 실패의 산물인 것이다. 다시 마키아벨리에 따르면 “우수한 지도자는 적이 결전을 걸어오지 못하도록 공격 전에 온갖 방책을 강구한다.” 즉 안전과 평화는 오직 준비된 공적 덕성·능력·방책의 산물인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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