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16 20:21
수정 : 2010.12.16 20:21
|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
나의 착각일까? 불안하게도 대한민국은 미국의 ‘퇴조 증폭’ 사이클을 흡사하게 따라가고 있다. 비록 미국 퇴조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장 전체주의로의 본격적 이탈 속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부시 전 정부는 이 퇴조를 증폭시켰다.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도 ‘위기 증폭’ 현상이 진행되는 느낌이다. 모험주의적 외교안보 노선, 과도한 재정적자, 고삐 풀린 시장 규제 장치, 견제와 균형의 파괴, 의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파괴, 연고주의 정치…. 다 열거하자면 책 한 권은 필요할 것 같다.
미국의 퇴조 징후들을 경고한 <뉴욕 타임스> 토머스 프리드먼 기자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교육이다. 그는 부시 시대에 틈만 나면 칼럼에서 미국 교육의 붕괴를 한탄한 바 있다. 이것도 나의 착각일까? 평화, 경제, 정치의 퇴조에 이어 마지막으로 교육의 퇴조가 진행되고 있다.
지나친 과장일까? 요즘 연말 송년회에서 다양한 분야의 기업 관계자들과 지식인들을 만나보면 공통된 위기감이 심각하다. 한국 기업의 성장 동력은 이제 거의 바닥인데, 그들이 마지막 보루로 믿어온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들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자신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혁명적’ 과외금지 조치로 ‘학원 키드’ 신세를 면한 덕분에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대학시절 ‘불온한’ 운동권 서적도 읽어보며 인간과 세계를 고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세대의 명문대생들 중 다수는 그런 ‘사치’를 누릴 시간도 정신적 여유도 없다. 오죽하면 방한한 노벨상 수상자 출신 과학자가 제발 공부 덜 하라고 호소할 정도일까? 어떤 이들은 자신들이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글로벌 인재라는 착각 속에서 기업에서 그런 대우를 해주길 기대하지만 정작 그들 간부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 다행인 것은 소위 세간의 기준에서 보면 명문대 브랜드가 아닌 인재들의 약진이 놀랍다는 사실이다. 한 유수의 기업은 최근 채용한 신입사원 연말 인사고과 평가에서 최고점을 자신들이 예상하지 못한 대학의 출신이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슈퍼스타의 서바이벌 게임장인 뉴욕에서도 잘나가는 한국인들은 기존 세속적 기준의 명문대 출신이 아닌 경우가 매우 많다.
기존 허상뿐인 브랜드를 통찰하는 눈을 가진 그 기업의 간부는 나에게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스티글리츠의 책을 내밀며 그가 가장 격찬한 경제학자는 소위 한국이 아는 세간의 명문대가 아니라 영국 개방대학 출신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기업 간부의 지적처럼 지금 아이패드 등 디지털 쇼크로 인해 한국에서도 서서히 기존 지식체계, 명문대의 독점이 사라지고 새로운 형태의 지구적 인재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록 퇴조중이지만 미국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두 기둥에 의해 아직 중국이 감히 넘볼 수 없도록 활력 있게 움직인다. 전자는 한국의 경박한 기준에서 소위 명문대 출신(하버드대)의 상징이고 후자는 소위 비명문대 출신(리드대)의 상징이다. 하지만 두 탁월한 대학은 추구하는 강조점은 다르지만 둘 다 ‘명문’이다. 이 두 가지 경로의 명문이 공존하면서 미국은 발전한다. 그리고 동시에 이 두 명문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에 의해 미국은 또한 발전한다. 이러한 래디컬리스트가 있음으로 해서 두 대학은 더 대학다운 대학으로의 고민을 숙성시켜갈 수 있었다.
난 올해 가장 중요한 현상이 고려대 경영대를 거부한 김예슬과 <슈퍼스타케이2>의 허각 신드롬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간적 공부와 자유로운 삶, 우정과 협업은 무엇인가의 화두를 한국 사회에 던졌다. 이제 2011년 한국 사회도 진정한 명문과 큰 배움(대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대논쟁을 시작해야 한다. 배울수록 무지해지는 공부 금지하기, 혼자만 쓸 수 있는 문서편집기 사용 금지, 옆 학우를 경쟁 상대로만 생각하는 상대평가 금지…. 도대체 언제쯤이면 이런 것들을 금지시킬 수 있을까?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