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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21 21:15 수정 : 2010.12.21 21:15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연평도 상황이 대체로 예상된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사격훈련은 확전 가능성으로 미군의 엄격한 감시하에 진행되었고, 북은 평화의 이미지와 더불어 핵문제를 통한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만들었다. 이제 진보, 보수를 떠나 남북의 잘잘못과 손익계산으로 설왕설래다. 그러나 이것은 이번 사태에서 극명하게 되살아난 한반도의 망령을 놓친 것이다.

종종 종교전쟁만큼 비참하고 어리석은 것이 없다고 한다. 사랑과 인간의 충만한 삶을 말하면서도 오히려 전쟁으로 인간을 철저히 파괴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종교를 위한 인간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어리석음은 비단 종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다는 이념이나 정치철학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 사람들이 희생되는 경우도 해당된다.

연평도 사태에서는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냉전 종료 후 잠재해 있던 주변 강대국의 힘겨루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6·25 동족상잔 이후 60년이 지났어도 한반도는 냉전시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강대국 구도 속에 이들의 세력싸움판에 불과함이 확인되었다. 명분이 무엇이건 연평도에서 나타난 현 남한 정권의 고집은 우리 삶의 터전인 한반도를 주변 강대국의 세력과시용 싸움판으로 상납한 셈이다.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지난 60년 동안 우리 사회가 배우고 변화한 것은 아무것도 없이 여전히 남북이나 좌우라는 입장에 따라 상대를 비난한다. 주변 강대국에 빌붙어 어깨에 힘주면서 그들을 위해 집안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상 강대국에 붙어 연명하던 나라치고 조만간 역사에서 사라졌지 결코 오래 지속된 나라가 없다. 60년 전에도 이념 싸움 속에서 강대국 대리전으로 황폐화되었던 우리 민족과 국토였다. 강대국이 주는 초콜릿 단맛에 취해서 스스로 정신차려 노력하지 않는 국가는 결국 강대국 이해에 따라 언제고 싸움판이 되어 세력경쟁의 희생물이 된다.

알다시피 국군은 전시작전권이 없어서 확전되면 즉시 미군의 지휘를 받는 휘하부대로 전락하니 일종의 외국군대의 졸개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자국민을 전적으로 책임지지도 못하는 국군이 연평도에선 전쟁 불사라는 식으로 큰소리친 것은 꽤나 우스운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최근 ‘한국 국방 선진화 방향’으로 개최된 국방포럼에서 한국군이 장기간 미국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작전 기획 능력과 전략적 발상을 하는 자체 능력을 상실하고 있고, 또한 갈수록 첨단화되는 군대장비에 있어서 교육만으로 제대할 때가 된다는 지적은 적절했다. 그러나 미국 의존성을 줄이기 위한 전작권의 조기 반환과 자주국방 대책과 더불어 그리고 단순노동이 아닌 전문인력이 요구되는 병기첨단화 시대를 맞이하여 사병 근무기간의 기계적 연장이 아닌 장기교육을 위한 모병제로의 전환 제시와 같은 자주국방에 대한 진지하고도 근본적인 고민은 아예 없었다.

결국 연평도 훈련을 강행한 현 정권은 민족과 국가의 입장보다는 포퓰리즘에 입각해 특정 이념과 정권 인기에 연연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생명이 담보된 사격훈련을 하면서 단합된 목소리로 국론분열을 막자는 대통령의 발언은 오히려 더욱 대립하며 싸우자는 이야기에 불과하기에 국민과 국토를 외세에 넘겨 더욱 황폐화시키자고 외치는 것과 같다. 강대국의 틈새에서 평화와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 없이 정쟁 속에 국론을 분열시켜 한반도 긴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사회문제를 덮어 보려는 특정 정권의 행태는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

종교전쟁이 어리석은 것처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남북, 좌우 이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국이나 미국, 더 나아가 김정일, 이명박 등이 아니라 우리 민족과 나라가 평화롭게 잘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평화보다는 강대국에 빌붙어 이념과 체면을 말하는 이들이야말로 남북을 떠나 민족반역자이자 매판세력이다. 외세의 끝없는 수렁 속에 민족과 국토를 밀어넣는 망령의 초혼가를 부르는 집단, 바로 이들이 국민 앞의 죄인이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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