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23 21:03
수정 : 2010.12.23 21:03
|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기부가 활성화된 사회로는 미국이 선두이고 그 뒤를 영국, 캐나다가 잇는다. 이에 비해 흔히 복지국가로 꼽히는 유럽 나라들에서는 기부 규모가 크지 않다. 복지지출을 위해 세금을 많이 내는 국가들에서 기부 규모가 작은 편이니, 기부가 사회의 이타주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식으로 의미를 둘 일은 아니다. 물론 민간 기부의 구실을 가벼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대사회에서 정부가 국민의 표준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공공제도를 발전시키는 데에 주력한다면, 민간은 다양한 시민집단 사이에서 나타나는 새롭고 급변하는 욕구에 기민하게 대응하여 공공을 보완하는 구실을 한다. 정부가 일을 하는 자원이 세금에서 나오듯이, 기부는 이런 민간활동의 주된 원천이 된다.
한국의 개인 기부는 국내총생산의 0.5%로 늘어 서구 선진국들의 평균 수준이 되었다. 기부 증가에는 세금공제 확대가 한몫을 하였다. 세금혜택에서 미국이 가장 후해 개인 소득의 50%에서 30%까지 세금을 면해 준다. 일본도 소득의 30% 정도까지 세금을 공제한다. 우리나라는 10여년 전까지 개인 소득의 5%까지 세금을 공제하였는데, 올해까지 20%로 확대되었다. 법정단체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내는 기부금에 대해서 개인은 소득의 100%까지 세금을 면제받는다.
우리나라 개인 기부 내용에는 따져볼 바가 없지 않다. 우선 개인 기부의 대부분이 종교단체에 치우쳐 있어 복지, 문화, 학술에 대한 기부는 미미하다. 개인 기부 중 종교단체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36%, 영국 11%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80%나 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기부금 모금과 지출의 투명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는 점이다. 기부금 사용처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고, 회계감독 기준을 제대로 적용하고 외부 감사를 의무화하는 등의 법적 규제나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다. 사정이 이러니 종교단체로 몰리는 그 많은 기부금 중 얼마가 사회로 환원되었는지, 복지모금단체에 낸 기부금이 누구에게 전달되고 어떻게 쓰였는지를 확인하기가 어렵다.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가 여론의 지탄을 받는 데에는 기부금 관리의 불투명성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작용하고 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정부는 공동모금회의 부정·비리가 모금 독점의 결과라며 의료모금회를 만들어 공동모금기관을 복수화하겠다고 한다. 기부금 유용에 대한 대책이라면 회계감독의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정도일 터이니, 정부의 이런 대책은 난데없어 보인다.
그런데 정부 말마따나 공동모금회에는 독점이라고 할 구석이 없지 않다. 공동모금회 기부금에만 100%의 세금공제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금회의 독점이 문제라면, 또 하나의 독점적인 모금기관을 추가하는 복수기관화가 해결책이 될지 의문이다. 법규정으로 혜택을 몰아주는 공동모금기관을 두 개로 늘리면 독점구조만 확대된다. 모금기관의 공익성과 투명성을 기준으로 세제지원 혜택을 차등화하여, 모금기관의 자발적 경쟁과 개혁을 촉진하는 방안이 낫다.
무엇보다도 민간이 알아서 할 공공모금기관 사업에 정부가 앞장서는 것이 꺼림칙하다. 사실 정부는 의료구제모금기관에 대해 “가족이 중병에 걸리면 파산하는 걸 막을 수 있는 의료안전망을 두겠다”는 속뜻을 밝혔다. 이런 정부 발상에는 의료든 소득이든 사회안전망에 관한 것은 정부가 책임지고 할 일이라는 자각이 빠져 있다. 기부금 사용에 대한 민간의 자율적 결정권이 존중될 때 민간 기부의 본성이 유지된다는 이해도 미흡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정부의 쌈짓돈으로 쓰는 관행을 막기 위해 1998년 출범하였다. 모금회의 활동에 개선할 점이 많지만,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며 기부금의 지출을 관리해온 것은 작지 않은 성과이다. 당장의 부정과 비리를 이유로 모금회를 정부에 종속된 하부기관으로 되돌리려는 처방이야말로 기부 활성화를 가로막는 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