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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27 20:05 수정 : 2010.12.28 15:04

김종철 〈녹색평론〉발행인

북한의 위기는 석유 기반 발전 모델 때문
우리에게도 조만간 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

어쩌다가 이렇게 한심한 상황이 되었을까. 다른 것은 몰라도 전쟁 걱정만은 덜게 되었다는 게 햇볕정책 이후 우리들의 생활실감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정권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새로이 정립된 남북관계가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남북의 화해·협력은 단순히 실용주의적 견지에서 보더라도 ‘남는 장사’임이 확실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전쟁불사를 외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지어 ‘사흘만 참으면 이길 수 있다’고 전쟁을 부추기는 언론도 있다. 이런 경우 ‘이긴다’는 게 구체적으로 뭘 뜻하는지 생각을 해보고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물론 북한에 대한 적개심은 근거가 없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북한 지도부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일으킨 원죄가 있고, 그 상처는 깊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엄연히 유엔 회원국의 하나인 사회체제를 부정하고, 그 붕괴를 기다린다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이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사고이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상정한 대북정책이란 단지 어리석기만 한 게 아니라 자칫하면 남북의 처참한 공멸로 발전할 수 있는 시나리오일 뿐이다.

북한 체제 붕괴의 판단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근거가 부실한 것임을 시사하는 증언도 꽤 있다. 가령 지난 이십년간 북한을 드나들며 의료지원 사업을 계속해온 재미동포 의사 오인동씨의 증언이 그렇다. 그는 최근에 펴낸 책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에서 이즈음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에서 ‘고난의 행군’이 끝났음을 보여주는 윤택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지도적 사회사상가 원톄쥔(溫鐵軍) 교수의 경험담도 마찬가지다. 원 교수는 농촌·농민·농업의 부흥 없이는 중국의 미래가 없다는 관점에서 이른바 ‘삼농문제’를 줄기차게 제기해왔고, 그 결과 ‘삼농문제’는 지금 중국 정부의 공식 현안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원 교수가 쓴 북한 방문기에 의하면, 북한의 농업생산은 근래 점차 향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분적이지만 시장거래도 활기를 띠고 있다. 예를 들어 평양의 ‘동목리 자유시장’에서는 다양한 소비물자가 거래되고, 산촌 사람들의 안색이나 옷차림도 그렇게 곤궁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휴전 이후 북한 사회의 복구 과정이 소련식 모델에 입각함으로써 석유와 기계 없이는 농업생산이 불가능하게 된 구조를 갖게 되었고,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미 1970∼80년대에 도시화·공업화가 과도할 정도로 진전되어 농촌 인구는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그리하여 90년대 초 소련 붕괴 후 석유공급이 중단됐을 때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조건(농산물 자급능력과 내수시장 확보)이 처음부터 결여돼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극심한 식량부족, 대규모 기아사태, 거기에 따른 극심한 체제 불안정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상수단으로 나온 게 ‘선군사상’과 핵개발이었던 것이다.

한때는 남한보다 앞선 공업사회였던 북한이 에너지·식량위기에 봉착하자마자 ‘천민국가’로 떨어진 것은 결국 석유에 기반한 그 발전모델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모델은 따져보면 서구식 산업화를 모방해온 남한의 발전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른 게 아니다. 이것은 석유공급이 중단된 상황에서 남한 사회가 어떻게 될지 잠깐 상상해보면 알 수 있다. 그때는 아마도 그 어떤 전쟁에 못지않은 아비규환의 참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 이대로 가면 조만간 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북한의 경우는 단지 선례에 불과하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북한의 임박한 붕괴를 운운한다는 것은 실로 가소로운 짓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유기농을 기반으로 한 지속가능한 생활을 남북이 공유하기 위한 평화·협력체제의 확보보다도 더 긴급한 과제가 없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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