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03 18:22
수정 : 2011.01.0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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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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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이다. ‘세밑’과 ‘정초’가 겹쳐지는 시점에 읽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은 인생의 참뜻을 깊이 생각하게 해준다. 피천득, 김종길, 정현종의 지혜로운 번역들은 어느 것을 읽어도 인생의 본질을 깨닫게 해준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어느 길을 갔고 어느 길을 가지 않았는가? 나는 어느 길을 갔고 어느 길을 가지 않았던가? 다 갈 수는 없었던 두 갈래 길 사이에서 지난해의 선택으로 인해 우리 공동체는 어떤 방향으로 들어섰고 또 얼마나 바뀌었는가? 또 나의 삶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바뀌었는가?
지난해의 여러 ‘공적 개인들’을 떠올려본다. 올해는 또 어떤 공적 개인들이 등장하여 우리 공동체를 성격 지을 것인가? 우리가 이들의 관련 사안에서 다른 길을 갈 수는 없었을까? 우리 공동체의 실수, 악행, 무지로 인해 많은 삶들이 어려웠고 세상을 떠났고 억울해했다. 평범한 시민 김종익은 국가의 불법사찰로 삶이 파탄 났음에도 국가는 어떤 복귀조치도 보상도 하지 않았다. 한 많은 삶을 살아온, 한국전쟁 시기의 학살과 인권유린 피해 유족들은 국가의 아무 구제조치도 없이 담당 기구가 시효를 다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정부가 처벌하였던 미네르바 박대성, 피디수첩의 피디들, 법적 임기를 보장받은 예술·교육기구 수장들인 김정헌·김윤수·황지우에 대한 축출은 모두 불법·부당·위법이었다. 그런가 하면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으로 많은 국민들이 갑자기 죽었다.
천안함 침몰에 따른 안보위기에도 불구하고 국무총리를 다시 병역미필자를 임명하는 안보해이적 인사도 있었다. 국가의 예산·결산을 감사하고 직무를 감찰하는 헌법기구인 감사원장은 헌법위반 상태로 장기간 비워져 있었다. 국민 권익을 보호하는 기구의 수장도 장기 공석이었다. 인사 난맥을 바로잡기 위해 설치했던 청와대 인사기획관 자리는 정부 스스로 폐지하였다. 유남영·문경란 인권위원을 비롯한 주요 구성원들의 사퇴로 국가인권위원회는 거의 마비상태로 접어들었다. 국가운영에서 감사, 국민 권익, 인사, 인권 보호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도 이렇게 수장의 장기 공석이나 기능 마비 상태로 둘 수 있는 것인지 정상적 시민의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하다. 또 정부 여당은 대통령과 가족들의 관련 예산이 과다하다는 논란 속에 신년 예산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우리가 ‘갔던 길’과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리며, 새해 함께 ‘가야 할 길’을 생각해본다. 하나는 말의 회복이다. 말이 뜻을 잃으면 공동체는 길을 잃는다. ‘공정’은 인사편중·편파검찰·예산편중으로 실종되었고, ‘국격’은 전쟁위기로 급격히 추락하였으며, ‘안보태세’는 수차 뚫렸고, ‘친서민’과 ‘중도실용’은 기업제일주의로 귀결되었다. 대북정책의 근간인 ‘상생공영’은 ‘상쟁공멸’ 위기로, ‘비핵·개방·3000’은 ‘북핵악화·폐쇄지속·경제추락가속’으로 거꾸로 발현되었다.
둘째는 ‘바른길’을 찾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피해를 본, 위의 ‘거꾸로 간 길들’ 중 가능한 것부터 바로잡길 기대한다. 새해 더 걱정스런 것은 선거가 없다는 이유로 오직 한길로 일방통행하는 것이다. 특히 다음 대선 결과에 관계없이 사업 결과를 돌려놓을 수 없게 하기 위해 올해 안에 4대강 사업과 종편 사업 등 ‘정권 사업’을 마무리하려 해선 안 된다. 현 정부는 이미 세종시, 6·15 선언과 10·4 선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앞선 정부들의 합법정책이나 국제약속을 뒤집은 바 있다. 특히 한-미 FTA의 경우, 국민과 야당의 재협상 요구에는 “재협상은 없다”며 국회를 난투장으로 만들면서까지 통과시키더니, 미국의 재협상 요구는 수용하여 수정하였다. 자기들은 이렇듯 자주 변경하면서도 다음 정부는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독선의 근거는 무엇인가? 다음 정부들이 다시 수정해야 하는, 국가자원의 막대한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꼭 듣는 정부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연말에 돌아보았을 때 국민과 공동체를 위해 ‘가지 않은 길’이 더 좋은 길이 아니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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