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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06 21:08 수정 : 2011.01.06 21:08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휴, 이번 칼럼 순서에는 또 뭘 쓰나? 그냥 평소 말하고 싶었던 영성의 정치에 대해 써볼까? 학교일로 파김치가 된 몸으로 귀가하면서 칼럼 주제를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무엇에 홀린 듯 방금 전 선물 받은 책의 첫 장을 넘겼다. 평소 존경하는 선배인 김상준 경희대 교수가 교양전담기구인 후마니타스 출범을 준비하는 그 바쁜 와중에 번역하여 선물로 준 <유쾌한 감옥>이란 책이다.

어, 이럴 수가! 바로 그 책은 우연히도 지금 스쳐가는 나의 생각처럼 ‘잃어버린 마음’, ‘잃어버린 영성’에 대한 커다란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왜 김 선배와 난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영성에 필이 꽂혔을까? 더구나 그와 난 민주화운동 시대의 세대로서 지금까지 개인적 영성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바꾸는 데 헌신했고 둘 다 특별히 종교적이지도 않은데 말이다.

하지만 김 선배의 역자 해제는 나의 의문에 명징한 답을 주고 있었다. 현실을 외면하고 눈을 감는 것은 영성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반대로 이 탐욕스러운 사익과 야비한 권력, 그리고 고삐 풀린 자본의 현실을 가장 깊이 대면하는 현장에서 영성은 피어오른다고 지적한다. 그 모순점과 싸우는 과정에서 그들을 닮아 얼굴이 분노로만 일그러지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정화의 촛불’을 태우는 것이 바로 영성이라고 말이다.

글쎄, 4대강과 정치사찰 이슈 등 당장 눈앞의 삶과 자유가 무너지는 급박한 상황 앞에서 무슨 신비롭고 계룡산 도사 같은 말일까? 하지만 지난해 시민들이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열광했던 것이 그저 민주에 대한 열망일까? 더 깊게는 건전한 사익이 아니라 야비한 사익 추구와 자유의 짓눌림, 그리고 소셜미디어의 현기증 나는 속도감과 얕은 관계 속에서 의미 있는 삶, 잃어버린 영성을 찾고자 하는 순례자의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탐욕과 불의, 속도와 가벼움의 시대를 경험한 미국도 영성을 계룡산 도사 취급하던 시절이 있었다. 용기있게도 힐러리 클린턴이 유대인 랍비 마이클 러너와 함께 영성과 ‘의미의 정치’를 공론화했을 때 그녀는 다음날 미디어의 조롱 대상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그 경박한 미국도 탐욕과 불의가 깊어지자 음과 양의 변증법처럼 오히려 영성에 대한 갈구가 증가했다. 2008년 버락 오바마 후보가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힐러리보다 더 계룡산 도사 같은 말을 쏟아냈을 때 이제 누구도 웃지 않았다.

당시 오바마 대 매케인의 싸움은 단지 시민들의 공동체를 추구한 진보 대 국가주의자 보수, 보편적 복지 대 선별적 복지의 대결만이 아니었다. 더 중요하게는 우리 안의 영성을 일깨우고 함께 더 좋은 삶을 위해 투쟁하는 매력적 진보 대 잃어버린 국가의 영광, 다시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노쇠한(육체적 나이가 아니라 정신이) 보수의 대결이었다.

한국도 정확히 마찬가지이다. 만약 지난 대선에서 영성과 의미의 정치를 주장한다면 생뚱맞게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2012년은 굉장히 다를 것이다. 현시대의 지독한 어두움은 촛불운동처럼 우리 내면의 밝은 빛을 다시 태우기 위한 단련기일 뿐이다. 지금 시대의 과제를 단지 복지나 민주, 정권교체로만 생각하는 이들은 더 깊고 넓게 향후 10년의 전망을 보아야 한다. 지금 시대정신은 단지 위험한 국가주의나 겉모양만 진보주의를 넘어 각 개인과 공동체가 잃어버린 마음과 영성의 촛불을 다시 환하게 켤 것을 요구한다. 깊은 마음과 영성의 토대가 부실한 정치는 공허할 뿐이다.

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책보다 김 선배가 번역한 <유쾌한 감옥>이나 리 호이나키의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라는 책을 훨씬 더 좋아한다. 샌델의 책은 미국식의 친절한, 그러나 인공적인 길 같고 후자의 책들은 순례자의 거친, 그러나 더 삶에 가까운 올레길 같다. 세계사적 대전환기를 맞이한 향후 10년은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다. 하지만 비틀거리며, 그러나 유쾌하게, 정의의 길로 걸어간다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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