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13 20:08
수정 : 2011.01.1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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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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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을 달리하는 정치세력들이 다양한 슬로건으로 자신의 복지 청사진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렇듯 복지정책이 주된 공론거리가 된 것은 우리 사회가 새로운 발전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징표로서 매우 반길 일이다. 오랜 기간 성장과 개발 일변도의 사고가 지배하던 사회에서 사회 통합과 국민의 삶의 질 문제가 주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여야를 불문하고 차기 집권을 꿈꾸는 정치세력 대다수가 복지를 내세우는 상황이어서 이들 주장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잣대가 절실하기도 하다. 여기 최소한의 평가 기준 몇 가지를 제기하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첫째, 복지 사각지대의 빈곤층에 대한 지원대책 없이 허울만 장밋빛인 복지 청사진을 경계해야 한다. 지난 10여년간의 복지 확충에도 불구하고 많은 취약계층이 여전히 먹고사는 문제로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 노인빈곤율이 45%대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들 중 단연 1위이면서도 변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현실만큼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은 없다. 이들 노인, 장애인 빈곤층의 열악한 삶을 외면하면서 복지를 논하는 것은 기만이다. 둘째, 감세와 복지 확충을 모두 이루겠다는 감언이설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지난 시기 복지 확충은 정부 재정지출의 조정과 국민 부담 증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건강보험료 인상 등 국민 부담 증가가 조금 있었지만, 복지 재원의 확충은 정부 재정에서 개발예산을 줄이고 복지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편이다. 하지만 이런 재정지출의 조정에도 한계가 있다. 복지를 확충하자면 정부의 세수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인 상황이 되었다. 이런 때에 감세와 복지 확충을 같이 하겠다는 환상적 주장을 믿어서는 안 된다. 셋째, 모든 복지 구상에는 국민연금의 정착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 서구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복지 문제에서도 고령화로 인한 연금지출 부담 증가에 장기적인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부터 연금 정착을 통해 노후 연금 재원을 준비하여 후대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그 대책의 기본이다. 이런 이유로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연금 개혁이 추진되었고, 2007년에는 소득의 60%에 해당하던 연금급여 수준을 2028년까지 40%로 낮추게 되었다. 이렇게 당장 급한 재정 수습책을 마련한 셈이지만, 수백만의 근로세대가 연금에 실질적으로 가입하지 않은 상황은 방치되고 있다. 이렇게 광범위한 연금 비가입자의 존재는 장래 노인빈곤으로 이어지고 그 대책은 후일 근로세대의 세금 부담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외에도 의료, 주거, 보육, 고용 등에서 정부 지원을 늘리고, 위기에 놓인 지자체 복지재정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 등 여러 가지 정책과제가 남아 있다. 그 대책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를 것이나, 복지 확대와 재정 부담 증가 사이의 선택에서 어떤 선호를 갖는가도 중요하다. 재정적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없는 복지 확대를 경계해야 하는 한편, 복지지출을 경제적 부담으로만 보아 재정 안정과 대립적으로 생각하는 편협한 시각 또한 벗어나야 한다. 특히 양극화, 고령화와 관련한 당장의 복지지출 증가가 장기적으로는 복지재정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복지지출은 사회 통합을 유지하고 취약집단의 생산적 잠재력을 높임으로써 경제 성장과 재정 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출산과 어린이의 건강한 발달, 여성, 노인의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선제적인 복지투자야말로 장기적인 복지재정 안정을 위한 효과적인 대책이기도 하다.
한국은 2008년 세계적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였다. 정부의 과감한 재정지출과 경기부양이 작지 않은 구실을 하였고, 경제위기로부터의 빠른 탈출이 다시 재정 안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도 기대된다. 양극화, 고령화에 대한 과감한 복지지출 또한 장기적 재정 안정을 이루는 지름길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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