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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4 20:19 수정 : 2011.01.14 21:49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비판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게 직장의 인사권자 비판이다. 당장 밥줄이 위태롭기 때문이다. 더 어려운 건 상사와 동료를 싸잡아 ‘내부’를 고발하는 거다. 밥줄은 물론 연줄까지 끊어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밥 먹듯 비판하는 기자들도 소속사의 사장을 비판하고 동료의 비리를 고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얼마 전 한국방송(KBS)의 한 젊은 기자가 사장을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보냈을 때 동료 기자들과 시민들은 용감한 행동에 환호했다. 언론은 남을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기 때문에 내부를 비판하는 성찰적 행위는 시민들에게 언론의 진정성을 확신시켜주는 알리바이가 된다.

문화방송(MBC) ‘피디(PD)수첩’이 11일 밤 방영한 ‘공정사회와 낙하산’ 편에서 케이티(KT) 전무로 간 김은혜 전 문화방송 앵커를 이명박 정부하에서 이루어진 낙하산 인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은 것도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언론계에는 소속사의 기자가 정계로 진출하면 밀어주진 않아도 비판은 삼가는 ‘전관예우’의 관행이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악습은 같은 직장에서 고생했던 동료에 대한 단순한 온정주의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지면을 통한 온정의 표현은 뉴스매체 사유화로 언론의 존재 근거를 훼손하는 심각한 문제이다. 김은혜 전 앵커에 대한 ‘피디수첩’의 날선 공격은 더 이상 전관예우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다른 견해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 한 명은 “전관예우 극복으로 보기 어렵고, 김은혜에 대해 특별하게 나타나는 태도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전관예우 극복의 의지가 있었다면 인사 초기에 했어야 하는데 뒤늦게 케이티 노조에서 낙하산 인사 철폐운동을 하는 시점에 하는 것은 이미지가 나빠진 전직 동료와 선 긋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경청할 가치가 있는 지적이다. 제작진이 들으면 진의를 의심받는 것 같아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전관예우의 극복이 그만큼 어렵다는 인정이 깔려 있다.

김은혜 전 청와대 대변인
사실 기자가 가장 뿌리치기 힘든 유혹은 매체를 사유화해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공익을 표방하며 사익을 추구하는 언론을 빗대 “가장 높은 곳에서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거인의 어깨를 밟고 선 수다스런 난쟁이”란 모멸스런 말까지 나왔을까. 그런데 이런 기자들 꽤 많다. 대통령 머리 꼭대기서 정략적 훈수 두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들은 벌써 박근혜의 대선을 본인들이 염려한다. 행여 한자리 떨어지지 않을까 하고 정치인의 참모 노릇을 자임하니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가 따로 없다. 그런데 둘러보면 스스로 몸을 낮추는 작은 거인 같은 기자도 많다. 삼성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노동자 보도를 한 프레시안 기자를 보라. 힘없는 노동자를 위해 삼성이라는 골리앗을 고발하고 있지 않은가. 언론의 말하기 중에 가장 으뜸은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서 거악을 고발하는 거다. 그건 인간에 대한 사랑과 권력에 저항하는 용기를 동시에 필요로 한다.

종편이 뜨면 언론의 정파성과 선정성이 극에 달할 거라고 이구동성으로 염려한다. 아마 그럴 게다. 하지만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 난쟁이들의 횡포가 심해지면 작은 거인들의 저항도 거세진다. 언론은 언제나 양면적이었다. 관건은 시민들의 적극적 개입이다. 기자들이 난쟁이가 되느냐 거인이 되느냐는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민들은 기자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 관심과 참여도 없이 객관성 달라! 공정성 달라! 무턱대고 졸라대 봤자 소용없다. 작은 거인들을 격려하는 연애편지를 쓰자. 보도 내용을 트위터로 퍼나르자. 그래서 그들이 시민의 대리인임을 자임하는 진정한 거인이 되도록 시민들이 스스로 키워나가자. 언론의 배후는 언제나 시민들이어야 한다.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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