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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8 22:27 수정 : 2011.01.19 10:57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2006년, 중국 베이징에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해 발표하러 간 일이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였을 때이다. 대사관이 중국 기업 및 학자들과의 교류 프로그램 주제로 기업 사회책임경영(CSR)을 선정해 진행했다.

5년 전의 일이 문득 떠오른 순간은, 지난 연말 한·중·일 사회책임경영 우수기업 ‘동아시아 30’ 시상식 자리에서 있었던 조너선 노트 주한 영국 부대사의 연설을 듣던 중이었다. 그는 기후변화 대응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해 영국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힘주어 강조했다. 외교관이 동아시아 기업들 앞에서 사회책임경영을 강조함으로써, 영국의 ‘국격’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5년 전 그 자리에 중국 학자들이 대거 참석해 한국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배워야 한다는 발언을 하던 장면도 겹쳐 떠올랐다.

연초 반가운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 외교통상부에서 작은 규모지만 사회책임경영 예산을 배정해 관련 업무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외교와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이 무슨 상관이기에 예산을 배정하느냐고? 이런 논란이 벌어진다면 그게 바로 한국 외교가 영국보다 한참 뒤떨어진 이유다.

우선 국외 시장에서 기업의 ‘격’은 그 나라의 ‘격’을 보여준다. 나라의 ‘격’을 높이는 것은 외교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사회책임경영은 그 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면, 영원무역이 방글라데시의 노동자 시위를 촉발시킨 원인이었다는 외신 보도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세계의 인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 인식은 중장기적으로 각 나라 외교 의사결정 과정에 스며들어, 결국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책임경영에 촉각을 곤두세웠다면, 미리 막을 수도 있는 사태였을 것이다.

한편으로 사회책임경영은 경제 외교의 진화된 형태이기도 하다. 경제 외교가 다른 나라와 싸우고 협상해 뭔가를 더 챙겨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을 때도 잦다.

요즘 한국을 다루는 경제기사를 들출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지기 일쑤다. ‘경제는 전쟁’이라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경제는 원래 국가 간 경쟁과 협력이 어우러지면서 성장한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자꾸 ‘경제 전쟁’만을 부추기는 듯하다. 긴장과 갈등은 결국 분단국인 한국에 가장 큰 손해를 안겨줄 것인데도 말이다. 주변 열강 사이 긴장이 고조될 때, 이 나라는 위기에 빠지곤 했다. 한일병탄 때의 정세가 꼭 그랬다. 경제적 이유에서 시작된 갈등은, 쉽사리 군사외교적 갈등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우리를 괴롭히곤 했다.


지금 한국이 해야 할 일은 오히려, 동북아 주요 국가들과 공통의 이해관계를 계속 개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화와 협력 무드가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중국도 일본도 미국도 북한도 함께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협력하는 것, 그게 한국에 가장 유리한 주변국 환경일 것이다.

사실 경제에서 국가 간 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 여러 주제들이 있다. 사회책임경영은 그 대표적 주제다. 시장을 놓고 싸울 때 세 나라 기업은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할 때는 얼마든지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30’처럼, 한국·중국·일본은 동아시아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고 서구 기준보다도 더 엄격한 사회책임경영 기준을 함께 만들고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적 특성이 반영된 사회책임경영활동 사례를 찾아 공유하고 유엔글로벌콤팩트 등 국제사회에 함께 발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책임경영은 아무래도 ‘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고,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반영되는 게 바람직하기 때문에, 지역 협력은 큰 의미를 지니게 마련이다.

그래서다. 외교통상부가 기업 사회책임경영 확산 노력에 동참한다는 소식이 반가웠던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이, 동북아 평화의 지렛대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timela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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