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1.27 19:39
수정 : 2011.01.2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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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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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천성이 <시크릿 가든> 드라마의 오스카와 달리 달콤한 말을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요즘 불만 섞인 충고를 자주 듣곤 한다. 가족으로부터가 아니라 진보진영으로부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보기에는 2012년 진보가 의미 있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더 충격적으로 비판하고 문제를 지적해야 하는데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나도 사실은 제일 하고 싶지 않은 말이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것인데.
물론 요즘 진보의 희망이 생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성근과 김기식씨 등의 다양한 시민정치운동이 시동을 걸고 있다. 최근 야권의 단일 무대를 절실히 염원하는 민심의 일단이 드러난 진보신당 당원조사 결과와 이에 강한 충격을 받은 활동가들의 고민도 바람직한 징후이다. 민주당의 이인영 최고위원도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한 대담한 민주당의 개방을 주문하고 나섰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연구원장은 노동 친화적이지 못했던 참여정부에 대한 자성의 행보를 시작했다. 노동과 결합하지 않는 자유주의 정당이란 미래가 없음을 그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더 고무적인 것은 한 보수 언론사가 매력적인 진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조국 서울대 교수를 정면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계적 저널의 글을 통해 학문적 권위를 가지면서도 공적 지식인의 책임감으로 정치를 바꾸고자 하는 그의 행보가 그들의 질투심과 불안감을 자극한 모양이다.
이런 희망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 배가 고프다. 올해부터 향후 10년을 더 인간적인 삶을 위한 진보의 시대로 만들기에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인 매력적 진보 문화와 상상력이 여전히 심각한 결핍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가의 테스트는 사실은 매우 간단하다. 과연 그 사회에서 매력적 상상력의 전위로서 인정받고 있는가의 여부가 핵심이다. 오늘날 미국 제도권 정치와 자본의 영감은 많은 경우에 1960년대 진보 엘리트들의 문화혁명과 상상력에서 나왔다. 오늘날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사고한 오바마 선거혁명이나 최근 위키리크스로 시민언론의 새 장을 연 어산지도 문화예술계나 기업, 제도권 정치에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고 있다.
일부 창조적인 시민운동가를 제외하고는 오늘날 한국의 현실은 정반대이다. 당신은 미래와 혁신을 상상하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누리집이나 당사를 방문하는가? 오히려 기업연구소나 미래학 서적들을 들춰보지 않는가? 당신은 새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채우기 위해 어디에 가는가? 정당 주최 행사에 가는가 아니면 홍대 앞에 가는가? 세계적 트렌드에서 뒤늦은 팔로어에 불과한 한국 기업이나 벤치마킹하는 이러한 기이한 현실에 대해 수치심이나 위기감을 느끼고 대담하게 혁신하려는 진보 엘리트들을 한국에서 만나기란 참 어렵다. 사실은 그들이 딛고 선 토대, 즉 시민들의 문화적 감수성은 놀랍게도 진화하고 있는데 말이다.
현재 야권의 정당과 시민정치 운동들이 진정으로 승리를 바라는지 테스트해보는 방법도 간단하다. 그건 그들이 선거연합, 단일 정당, 대선 후보 경쟁에만 정신이 쏠려 있는지 아니면 동시에 시민들과 함께 대담한 정치문화 개조 프로젝트를 가지고 있는지의 여부이다. 난 2007년 말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직후 한 언론사와의 대담에서 미국의 무브온과 같은 시민정치운동을 시작하자고 화두를 꺼낸 적이 있다. 그리고 작년에는 이 지면을 통해 진보진영 모두의 ‘슈퍼스타 K’ 무대를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요즘 추세를 보니 올해 얼마든지 이 두 가지는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전에 먼저 진보진영의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진보 TED’(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한 지식 콘퍼런스)를 만들었으면 한다. 기업들조차도 벤치마킹 하기 위해 혈안이 된 그런 진보만이 집권할 자격이 있다. 지금 문제의 우선순위는 야권 단일화 매뉴얼이 아니다. 상상력의 근육운동이 더 먼저이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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