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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2.14 18:40 수정 : 2011.02.14 18:40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구제역 발생 두달 반 만에 315만마리의 돼지와 15만마리의 소가 살처분되어 땅속에 묻혔다.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소와 돼지의 4분의 1이 갑자기 죽은 것이다. 소요재정은 3조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그들이 이 첨단문명시대에 이토록 단시일 내에 죽어갔다는 사실은 쉬이 믿어지지 않는다. 더욱 문제는 소와 돼지의 매몰로 사태가 종식된 것이 전혀 아니라는 데에 있다. 날씨가 풀리고, 얼었던 지반이 무너지고, 홍수가 나면 매몰지 침출수의 유출로 인한 지하수 오염이 우려되고 있다. 구제역은 9개 시도 70개 시군에서 발생했고, 총 4632곳에 이르는 매몰지가 전국에 걸쳐 있다. 몇몇 조사에 따르면 벌써 일부 지역은 절반 정도가 부실 매몰로 인한 붕괴와 침출수 유출 위험이 보고되고 있다. 환경재앙과 함께 인간 식수 오염도 우려되는 상황인 것이다.

동물재앙이 끝내 인간재앙으로 옮아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몇몇 부문에서는 벌써부터 구제역 파동이 인간 문제로 옮아오고 있다. 젖소 살처분으로 인한 원유 수급 부족으로 우유, 버터, 제과, 제빵 원료의 부족이 우려되는가 하면, 학교급식 체계의 일부 붕괴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복지논쟁의 와중에 아이들의 기초적인 먹거리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돌아보면 촛불시위도 최초 발단은 쇠고기라는 먹거리로 인한 것이었다. 배추 파동과 무상급식 논란 역시 먹거리 문제였다. 지금의 핵심 경제문제들, 즉 물가, 전세대란, 가계부채, 등록금, 공공요금 등은 전부 서민경제문제이다. 재벌경제도, 국가경제도 아닌 서민문제는 지금 이 시대, 이 정부의 본질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경제제일주의를 내건 정부에서 왜 이토록 먹거리며 서민경제가 한 해도 안 빼놓고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가? 게다가 국가경제, 수출, 기업 매출과 이익, 주가, 무역이익… 전부 너무 좋다는 통계가 잇따르지 않았는가? 그게 바로 문제였다. 즉 ‘재벌경제-국가경제 발전’과 ‘서민경제 피폐’의 구조적 만남이 문제의 요체였다. 이제 우리는 문제의 한 본질을 깨닫게 되었다. 정부와 정당들과 언론들이 ‘경제, 경제’ 할 때 그 경제에는 ‘여러 경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경제제일주의 역시 여러 개가 존재한다. 누구의 어떤 경제를 제일로 삼는 것인가?

만약 소·돼지 문제를 국가경제 문제로 인식해, 국가경제통계를 좌우하는 전자·금융·반도체·자동차·철강 산업의 4분의 1이 두달 반 만에 날아간다고 했을 때에도 정부는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놔두었을 것인가? 아마 대통령 이하 모두 나서서 대한민국은 망한다며 특별융자니 특단대책이니 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배추, 구제역, 전세, 물가 대응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서민들이 먹고 마시고 거처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국가경제와 국민경제도 있는가?

그들이 말하는 경제는 늘 수출경제, 국가경제, 첨단경제, 재벌경제가 먼저였지, 서민경제, 국민경제, 먹거리경제, 복지경제는 아니었다. 항상 전자를 앞세우면서 더 이상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전체인 것처럼 호도하지 말기를 바란다. 특히 재벌기업과 첨단산업의 국내외 매출 비중과 국내 고용 유발 효과에 관한 통계를 정밀 분석하면 ‘재벌경제=시장경제=국가경제=국민경제·서민경제’라는 논리가 허구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이번 구제역 파동과 서민경제 대란을 겪으며 우리는 바른 경제제일주의, 즉 ‘재벌’ ‘국가’제일주의가 아니라 ‘서민’ ‘국민’제일주의를 내세우는 참된 민주정부를 갖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그 점에서 이번 구제역과 서민경제 대란이 주는 경제와 민주주의에의 진지한 학습효과를 기대한다. 대통령이 믿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않으니 이토록 온 나라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난리가 나고 있는 것이다.(마태복음 6: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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