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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01 19:37 수정 : 2011.03.01 19:37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지난 2월24일 애플의 주주총회에서는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에 대한 주주들의 투표가 있었다. 최초로 진행된 이번 과반수 투표는 캘퍼스(캘리포니아공무원퇴직연금)의 제안으로 이뤄졌다. 사실 애플이 거부하던 것을 캘퍼스가 주주투표로 관철시켰다. 캘퍼스는 애플 주식의 221만여주(0.24%)를 보유하고 있고, 잡스는 554만여주(0.60%)를 가지고 있다. 캘퍼스가 다른 주주들을 설득해 애플의 반대를 누른 셈이다.

원래 애플의 이사는 사실상 잡스가 임명하는 구조였다. 주주 대상 투표를 진행하기는 했으나, 회사 쪽에서 내세운 이사후보를 주주가 명시적으로 거부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도입한 절대다수 투표제로, 그 길이 열렸다. 다른 이사들과 마찬가지로 잡스에 대해서도 ‘투표’라는 상징적 행위가 이뤄진 것이다. 잡스에 반대하는 주주도 나왔다. 제아무리 잡스라도 예외 없이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적용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잡스는 최근 계속해서 건강악화설에 시달려왔다. ‘잡스 없는 애플’은 가능할까? 사실 이번 캘퍼스의 행동은 이 질문에 대한 미국식 대답이다. 잡스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선출되는 것이다. 미국 기업에는 언제나 경영자와 견제와 균형을 이루며 기업을 이끌어가는 장기투자자 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이다.

잡스는 매력적인 경영자다. 그가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했던 연설은 그의 삶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늘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이라면, 오늘 하려던 일을 그대로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한다. 언제 들어도 마음을 울린다.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만약’ 죽음을 맞는다면 그의 진정성은 수많은 이들을 울릴 것 같다.

그러나 자연인 잡스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있다. ‘애플’이라는 기업이다. 잡스 이후에도 애플은 남는다. 그 기업에 고용되어 일하는 5만명의 직원들이 있다. 지난해 연쇄자살 사태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던 중국 폭스콘과 한국 삼성전자를 비롯한 수많은 납품업체들도 있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아마도 이제 수억명에 다다를 소비자들도 있다. 스티브 잡스의 삶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더라도, 그들의 삶은 계속된다. 애플은 그 나머지를 버텨가야 하는 운명을 맞을 것이다.

캘퍼스의 움직임이 눈에 띄는 것은 그래서다. 잡스 없는 애플이 어떻게 계속될지를 그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기업 경영권을 둘러싼 견제와 균형이라고 부르고, 또 기업지배구조라고 부른다. 잡스가 없으면 사라질 것 같던 애플은, 캘퍼스와 함께, 또는 미국 자본주의가 장기투자와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중심에 놓고 구축해놓은 기업지배구조와 함께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다른 잡스를 만들어 그 자리에 세울 것이다.

요즘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창조적 인재를 키우는 일,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다들 잡스에 관심을 쏟는 지금, 나는 문득 궁금하다. 우리는 캘퍼스를 가졌는가?


주주의 권리만을 신성시하는 미국 시스템을 부러워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나라에서 가장 잘나가는 경영자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세력이 있는 사회가 부러울 뿐이다. 주총에서는 겸손하게 자신이 가진 0.6%의 지분만 행사하고 패배를 인정하는, 그런 경영자가 부러울 뿐이다. 그 경제의 운영 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부러울 뿐이다. 그들이 잡스 이후에도 애플을 지켜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부럽다.

사족 하나. ‘한국판 스티브 잡스’를 정말 만들고 싶다면,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을 다시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그를 만든 것은 잔기술이 아니다. 사랑과 상실과 죽음에 대한 성찰이다. 우리 기업에 부족한 것이 균형이라면, 우리 경영자들에게 부족한 것은 성찰이 아닐까. www.facebook.com/lee.wonjae.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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