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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03 20:06 수정 : 2011.03.03 20:06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돌팔이 의사가 매우 친숙한 시절이 있었다. 병원 가기가 워낙 어려워, 어깨너머 곁눈질로 의술을 익힌 이들이 용돈벌이 겸 이웃돕기로 하는 진료가 빈번했다. 돌팔이 진료가 사라진 데에는 1977년 시작된 건강보험의 역할이 컸다. 건강보험으로 병원 문턱이 낮아지자 국민 건강도 크게 나아졌다. 1960년대 50살을 조금 넘었던 국민의 기대수명이 이제 80살에 다가섰으니 건강보험의 공이 적지 않다.

하지만 건강의 축복을 모두가 같이 누리는 것은 아니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서초구 주민의 기대수명은 83살이 넘지만 강북 주민의 수명은 이보다 5년이 짧았다. 대졸자와 초졸자 수명은 10년이나 차이가 난다고도 한다. 이렇게 건강과 수명에서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진 데에는 부의 불평등 탓이 크겠지만, 건강 같은 필수적 욕구에서는 모든 시민을 동등하게 대우하려는 정부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건강보험 등으로 보장해주는 공적인 의료비 지원이 낮으니, 환자의 사적 부담이 크다. 병원비 대다 가계 파탄을 맞는 일도 드물지 않으니, 질병은 가난으로 빠지는 급행티켓이 되었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비 지출 중 공적인 부담 비율은 55%에 그쳐, 공공 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이나 멕시코를 빼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서 최하위권이다. 산업화 시기 재정부담을 피하려는 정부가 건강보험 급여를 주는 의료서비스 범위를 좁히고 보험급여 서비스에 대한 본인부담을 높게 잡은 데에서 공적 보장의 부실이 비롯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건강보험 비급여 서비스를 줄이고 본인부담도 낮추는 노력으로 공적 보장을 강화했지만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참여정부는 선진국 수준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는 계획을 추진하여 암보장 등 성과를 거두었지만, 서구와의 격차는 여전하다. 건강보험료를 올려 거둔 재원으로 보장성을 강화하려 했지만, 비급여 서비스의 지출 증가와 고령화로 분출하는 의료욕구를 따라잡기 어려웠다. 이 시기 실험은 정부 재정지원을 크게 늘리지 않고 건강보험에만 의존해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어디인지를 보여주었다.

공적인 의료보장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노력이 아쉬운 터에 정부 일각에서는 민간 의료보험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민간보험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민간보험은 주로 고소득층의 의료 이용을 돕기 때문에 계층 간 불평등을 키우는 한편, 고소득층의 서비스 이용 증가는 건강보험의 재정부담을 키우게 된다.

그래서 정부의 공적 지원을 늘리는 게 정도이다. 이때 특정 질환에 대해 본인부담 비율을 낮추는 기존 방식보다는 본인부담 총액 중 과도한 지출부담을 면해주는 데 자원을 집중하면 좋겠다. 특히 지급능력이 떨어지는 저소득층의 본인부담 상한액을 낮추어 의료 이용에서 계층 간 격차를 완화하는 걸 우선해야 한다. 현재 상위 20%의 소득계층에 대해서는 400만원, 하위 50%에 대해서는 200만원, 중간층에 대해서는 300만원의 본인부담 차등제가 실시되고 있으니 이를 좀더 손보면 좋겠다. 하지만 건강보험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서비스가 많고 이들 서비스에 대한 지출은 본인부담액에 포함되지 않아 본인부담 상한제의 효력이 크지 않다. 그래서 정부 재원을 늘려 필수적인 비급여 서비스를 보험 틀 안으로 포괄하는 게 급선무다.

우리 의료지출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9%나 되는 빠른 속도로 늘었다. 건강보험 적용 서비스를 넓히면 그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이다. 따라서 공적인 보장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료지출 증가에 낀 거품을 들어내어 합리적인 수준으로 비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료 행위에 건당으로 보상하는 행위별 수가 체계는 의료진의 과잉진료를 낳고 의료지출을 부풀리는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는 만큼 그 개혁이 절실하다.

과도한 본인부담을 막고 적정 비용을 유지하는 공적 의료보장의 실현이야말로 건강평등사회에 이르는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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