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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1 20:23 수정 : 2011.03.11 20:23

이종원 일본 릿쿄대 부총장

이종원
일본 릿쿄대 부총장

재일한국인의 ‘정치헌금’ 문제가 일본 민주당 정권을 흔들고 있다.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이 국회 질의에서 ‘불법’ 헌금 문제를 추궁받은 4일 후에 전격 사임한 데 이어 11일에는 간 나오토 총리 자신도 재일한국인에게서 받은 정치헌금을 인정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헌금 액수는 그리 많은 것이 아니다. 마에하라 외상의 경우 중학생 시절부터 ‘어머니’처럼 따르던 이웃 불고깃집 아주머니에게서 매년 5만엔(한화 65만원 상당)씩 5년간 합계 25만엔을 정치헌금으로 받았다는 것이 사임의 직접적 이유다.

간 총리의 경우는 두 번에 걸쳐 104만엔의 헌금 사실이 보도되었다. 간 총리는 즉시 기자회견에서 재일한국인임은 알았지만 국적이 외국(한국)이라는 인식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마에하라 외상과는 달리 간 총리가 이 문제로 사임할 가능성은 낮지만, 민주당 정권에 큰 타격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정치자금규제법의 관련 규정은 매우 엄격하다. 액수의 과다에 관계없이 외국인의 정치헌금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고, 외국인임을 알면서 고의로 헌금을 받았을 경우, 3년 이하의 금고 또는 50만엔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유죄 판결이 확정되면 공민권도 5년간 정지되어 정치가로서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외국인이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주권국가의 장치로, 대부분의 나라들이 일정한 규제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번 사태에서도 명백히 나타나듯이 재일한국인의 경우, 이 같은 법률 규정이 상정하는 “외국인의 정치적 영향력 차단”이라는 발상에는 맞지 않는 현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재일한국인은 여전히 그 다수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자그만 사업들을 하자면 관청은 물론 자치체 의원이나 국회의원들과의 ‘교제’도 필요하게 된다.

각 지역사회에서 유지로 활약하는 재일동포들도 많다. 정치가들 입장에서도 이들은 지역사회의 여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지지자가 된다. 또한 재일동포의 상당수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고 있고, 귀화하지 않은 경우에도 일본식 성명을 쓰기 때문에 외견상으로 ‘국적’을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 사장이나 축구 스타 이충성(李忠成)처럼 한국 이름 그대로(발음은 일본식이지만) 귀화해서 활약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재일동포 사회는 그 역사도 길며 일본 사회와 분리되지 않고 깊게 통합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문화적·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생활 그 자체는 일본 사회의 일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을 ‘외국인’으로 획일적으로 줄긋기를 했을 때, 이번 사태와 같이 복잡한 현실과의 괴리가 불거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2006년 외국 기업의 헌금에 대해서는 규정이 완화되어, 외국자본 비율이 50%를 넘어도 일본 국내에 5년 이상 상장한 기업은 헌금이 가능하게 되었다. 경제의 글로벌화에 대응한 현실적 조처다. 그러나 일본에서 나서 자란 재일동포라도 ‘외국인 헌금 문제’로 추상화되는 순간, <아사히신문> 사설(3월8일)의 표현처럼 “국가간의 첩보”를 둘러싼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비약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역사적 경위와 현실을 감안하고, 또한 글로벌화 추세에 대한 대응이라는 관점에서 정치자금규제법의 개정 필요성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거론되고 있다. 자민당 보수파는 ‘외국인 헌금’ 문제를 들어 민주당 정권에 대한 이념적 공세의 끈을 늦추지 않을 기세이다. 한·일 간에 현안이 되어 있는 정주외국인 지방참정권 문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재일한국인의 헌금 문제는 자민당을 포함해 다른 정치가들에게도 유사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재일한국인 사회가 일본 정치와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그 현실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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