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3.28 21:19
수정 : 2011.04.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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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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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일본 동북부 대지진은 인류와 일본 역사에서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발달된 인터넷과 방송기술로 인해 전세계에 생중계되는 참상은 세계의 모든 눈을 일본으로 고정시켰다. 눈앞에서 전개되는 ‘실제’ 상황은 우리의 눈과 입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세계 경제와 선진문명의 한 중심부에서 벌어진 현실은 경악과 공포 자체였다. 금번 자연재앙은 인간에겐 모든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동시에, 오늘 우리 삶을 구성하는 어떤 안정요인도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줬다. 인간의 능력은 자연의 절대위력 앞에선 참으로 보잘것없었다.
자연재앙보다 우리를 더 큰 공포로 몰아넣었던 것은 문명의 재앙이었다. 자연재앙은 종종 불가항력적이다. 이에 인류는 자연재해 앞에선 분노 대신 숙명의 마음을 가져왔다. 그러나 인간 행위의 산물인 문명재앙은 차원을 달리한다. 문명재앙의 범위 역시 자연재앙처럼 지방적, 국지적이지 않고 전국적, 세계적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절체절명의 위기는 분명 문명의 산물이다. 지진해일(쓰나미) 지역을 훨씬 넘는 일본의 방사능 공포 역시 문명 발달 때문이었다.
또 방사능과 수산물, 수돗물과 채소의 오염 공포는 일본과 동아시아와 세계의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인도네시아 지진해일, 중국 쓰촨성과 아이티 대지진과 달리 금번 사태는 자연재앙을 넘어 세계 문명의 일대 위기로 기록될 것이다. 이제 인류는 어느 정도의 문명 발달로 자연에 대처하는 동시에 자연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나아가 금번 재앙은 인간의 재앙이었다. 대재앙 이후 침착, 양보, 배려, 질서, 절제를 보여준 일본 국민과 사회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안전대국, 매뉴얼대국에서 드러난 리더십 공백과 시스템 붕괴는 일본 문제의 요체를 전부 드러내주었다. 리더십과 시스템의 본질은 일상의 시기가 아니라 위기 국면에서 드러난다.
‘자연재앙 이후’의 정보와 사실 공개의 즉각성과 진실성, 사망·실종 대처와 집계, 방사능 위험 고지, 의료 지원, 긴급원조물자 배분, 교통 체계, 식량조달 체계, 난민 대책 등을 보면 유능한 리더십도, 짜임새있는 시스템도 찾기 어려웠다. 금번 위기에 함께 침몰한 것은 일본의 국가리더십과 시스템이었다. 일상에 강하고 위기에 약한, 밑으로부터의 민주혁명을 거치지 않은 일본 사회의 구조적 한계였다. 일본 국민이 보여준 덕성에 바탕한 문명국가 일본의 대수술과 재건을 기대한다.
대참상 앞에서 세계를 흔들어 깨운 것은 세계시민, 특히 일본의 식민통치로 고통받은 동아시아인들의 성원이었다. 특별히 일본제국주의로 인해 삶을 짓밟힌 한국 위안부 할머니들의 선제적 행동은 모두의 심금을 울렸다. 한국의 반일 독립운동, 정신대 대책, 민족운동 단체의 뜨거운 일본돕기 운동은, 유대인의 독일돕기 운동을 상상해볼 때,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앞선 관용을 보여주어 인간적 감동을 자아낸다. 그들은, 인간사랑은 민족을 넘어 인류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한국 시민·민족운동의 보편성, 세계성, 인류성을 확인한다. 이제 ‘대재앙 이후’ 위안부, 독도, 교과서,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보편성, 세계성, 인류성을 기대하게 된다.
끝으로 동아시아 연대와 영구평화를 향한 오랜 소망을 하나 말하고 싶다. 즉 동아시아긴급재난구조본부의 설치이다. 인간들은 재난 앞에서 하나가 되고 협력을 하게 된다. 인도네시아, 쓰촨성, 일본의 대비극은 해당 국가 단독으로는 즉각 대처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중국·대만·일본·아세안·한국 등이 인력과 재원을 분담하여 동아시아긴급재난구조본부와 지부를 설치하고, 역내 긴급재난 발생에 대해 즉각 공동대응을 해야 한다.
동아시아 공동인간안보기구를 구성해 국경을 넘는 기구 구성, 연합훈련, 인간사랑을 실현하여 동아시아 연대와 통합과 영구평화의 꿈을 키워가자. 그럴 때 이번 일본의 재앙은 동아시아 인간연대와 영구평화를 향한 소중한 밀알이 될 것이다. 일본 국민의 비극에 깊은 위로와 조의를 표한다.
박명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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