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05 20:44
수정 : 2011.04.05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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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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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진과 이에 따른 재해 상태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일본 국민들의 침착하고도 질서 잡힌 행동이다. 일부 혼란과 무질서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방역당국의 지시에 따라 대처하는 모습은 그동안 여러 나라의 사회재난 상황에서 무정부적 혼란에 익숙했던 우리에겐 낯선 광경이었다. 물론 이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겠지만, 이렇게 정부를 믿고 따르는 일본인의 모습과 정부의 발표를 믿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차이는 분명하다.
이러한 일본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는 단순히 일본 정부가 언제나 국민들에게 솔직할 것을 믿는 그런 유치한 신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 있는 정치집단이 모든 면에서 솔직하다면 오히려 세상은 더 어지러워질 것이다. 또 정부라는 것도 어차피 사람들의 집단인 이상 구성원들의 부패나 부정은 언제나 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이 국가와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에 대하여 갖는 신뢰는 더 깊은 곳에 있다. 그것은 국가가 결코 국민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자,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가 자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무리 비난과 비판을 받는 정부라도 자국민을 위하지 않는 정부가 있을까라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그 당연한 질문 앞에 한국의 역대 정권의 역사는 당당하지 못하다. 능력은 부족했어도 진정성이 있었던 노무현 정권이 비교적 예외이겠지만, 이승만 정권부터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국내 정권은 언제나 국민들보다 자신들의 집단이익을 앞세워 왔다. 국가와 자신들을 교묘히 혼재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마치 국가의 이익인 양 국민을 기만해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과거 군사독재 정권을 포함해 역대 정권 중에 최악은 현 정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방 이후 혼란 속에 무기력했던 이승만 정권은 논외로 한다 해도, 군사독재 시절 비록 무력에 의한 비민주적 독재 집권이 장기화되어 자유로운 국민의 삶이 억압되었지만 그나마 비밀리에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도 있었다. 냉전 논리 속에 미국에 빌붙어 특정 집단의 이익을 꾀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나름 국가를 위한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현 정권은 신자유주의라는 틀 속에서 자국민의 이익을 지키기보다는 철저하게 미국과 자신들을 동일시하며 모든 것을 진행해 왔다.
집권 초기 미국산 쇠고기 완전 개방에서 미국 대변인 노릇을 보여주고, 재협상은 없다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미국에 유리하게 끝낸 뒤 좋은 협상이었다고 선전했다.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와 대북관계 중단으로 북한에 대한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준 현 정권은 국민의 삶이나 국토 보존과는 거리가 먼 부자 감세, 미디어법 개정, 4대강 사업 등을 추진했다. 현 정권과 토건집단의 이해득실만이 중요했을 뿐 국민과 국가의 진정한 자주 발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편, 패망국으로서의 일본은 비록 승전국에 기대어 국가를 경영해야 했지만 역대 어느 정권도 결코 자국의 이익을 저버린 적이 없다. 그 어느 나라 정부와 마찬가지로 비리나 부패는 있었지만 한국 역대 정권과는 달리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기본자세는 저버리지 않았다. 비록 정한론을 주장했지만, 과거 일본 개화기에 영국과 프랑스라는 외세를 뒤에 업고 대치한 쇼군과 천황 사이의 갈등을 자국의 입장에서 막후 타결로 마무리한 사이고 다카모리라는 인물은 상징적이다.
이와는 달리 러시아와 미국을 뒤에 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집단 이익만을 주장하다가 분단의 비극을 반세기 넘게 겪고 있는 것이 우리다. 부디 이런 역사의 끝자락이 외국에 아부하며 공공성마저 파괴하여 제 이익을 챙기는 현 정권으로 마무리되기를 기원해 본다. 그러나 불행히도 최근 진보대연합 과정에서 보듯이 집단 이기심은 비단 집권 세력만이 아니라 야권에도 현저하다. 단지 자기 집단만을 생각하는 국내 정치인들이니 누가 집권하건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의 불신이라는 비극은 계속될 듯하다.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역대 정권이 우리 근대 역사의 산물이라고 하기에는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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