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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07 19:57 수정 : 2011.04.07 19:57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난 어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지금 뉴욕에 막 도착했다. 이 두 도시는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인간화하는 미국 자유주의 진영의 영원한 고향과 같은 곳들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나 뉴욕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같은 거물 ‘강남 좌파’(<뉴욕 타임스> 데이비드 브룩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보보스, 즉 부르주아 보헤미안)가 이 두 도시를 상징하는 정치인들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한국판 샌프란시스코나 뉴욕에서 의미심장한 변화가 시작됐다. 과거 낡은 운동권 스타일과 다른 매력적 자유주의가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보수 언론이다. 얼마 전 한 보수 언론은 샌프란시스코 자유주의 스타일을 가진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매력을 시샘하며 ‘강남 좌파’란 낙인을 찍기에 바빴다. 이어 이들은 경기도 분당이 더는 애리조나 같은 꼴통 보수의 도시가 아니라 맨해튼 교외의 호보컨 같은 자유주의적 도시가 되어감에 큰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들의 예감은 정확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분당과 서울은 자유주의 혁명의 진앙지가 될 것이다.

물론 미국의 자유주의자나 보보스, 그리고 한국의 ‘강남 좌파’란 명칭이 한때는 부정적인 낙인이었다. 두 나라의 개혁정부 시절 지나친 좌파적 이상이나 혹은 반대로 천민자본주의에 투항하고 결국 서민층과 괴리를 보인 탓에 마치 특권층의 일부처럼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의 사이클은 지금 두 나라에서 자유주의를 부상시키고 있다. 자본주의의 힘을 이해하면서도 이를 부단히 인간화하려 하고 자유로운 문화적 감수성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도 운동권 정서를 가진 힐러리 대신 자신들의 자유주의 스타일과 더 어울리는 오바마를 예비경선에서 선택했다. 물론 미국 제국의 과거에 대한 향수와 꼴통 보수의 정서를 가진 공화당의 존 매케인은 본선에서 이들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다. 한국에서도 이들은 아직도 운동권 정서를 가진 야권 정당들 대신 자신들의 자유주의 스타일에 더 적합한 조국 교수와 같은 이들에 환호성을 보내고 있다.

이를 불편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일부 보수진영은 어리석게도 그들이 입만 열면 설교를 늘어놓는 대한민국 선진화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놓치고 있다.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지금 한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질적으로 이행하는 길목에 서 있다. 그동안 수십년간 재미를 보아온 한국 대표 기업들의 ‘카피 앤 페이스트’(copy and paste) 방식의 경제성장은 ‘강남 좌파’인 스티브 잡스의 창조 자본주의 혁명 앞에서 더는 작동이 불가능하다.

그럼 이를 위한 상상력과 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창조 계급’이 그러하듯이 자유롭고 급진적인 상상력을 흡수하는 자유주의 문화에서만 가능하다. 세계적 제국의 도시인 뉴욕이나 런던에 타워팰리스 같은 고급 빌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보헤미안들도 공존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미국의 ‘강남 좌파’ 워런 버핏 회장이 지금 오바마가 너무 좌파적이지 못하다고 공개적으로 호통을 치고 있는 것도 바로 창조 자본주의의 미래를 걱정해서 하는 행보다. 아직 천민자본주의 단계인 한국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보수가 항상 주창하는 선진화, 진보가 그토록 염원하는 정권교체는 바로 이 자유주의 혁명에서 출발할 것이다. 만약 두 진영이 각자의 꿈들을 단지 구호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믿는다면 놀랍게도 서로 공통된 전략적 목표가 있는 셈이다. 자유주의 시대로의 이행 말이다. 다만 수많은 스펙트럼이 가능한 자유주의를 어떤 빛깔의 것으로 만드는가의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흥미로운 2012년이 다가오고, 자유주의 혁명을 위한 세대는 미국과 한국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분당 좌파’의 한 명으로서 선거 결과가 참 궁금해진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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