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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08 19:24 수정 : 2011.04.08 19:24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일본 도호쿠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과 해일(쓰나미)로부터 한달이 지났다. 3월11일 이후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나쁜 꿈을 계속 꾸고 있는 느낌은 아닐까? 필자가 거주하는 도쿄는 조금씩 일상생활로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지진해일이 휩쓸고 간 도호쿠 해안지역의 마을들은 여전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상황도 좀처럼 밝은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방사성 물질의 대기 방출에 이어 해양 오염 문제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생선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자 인근 어민들은 어로작업을 포기했다. 채소에 이어 후쿠시마산 쇠고기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확산·축적되면서 식물연쇄(食物連鎖)의 오염이 본격화했다는 징후다. 파괴된 원자로를 조속히 제어하지 못하는 한 불안과 혼란이 수도 도쿄를 포함해 일본의 중심부를 직격하게 될 것이다.

지난 한달 동안 미증유의 재해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 사회의 강함과 약함, 가능성과 문제점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었다. 외국 언론에도 보도된 것처럼 일본 시민 개개인은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고 질서있는 태도를 보였다.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안위보다 주변을 배려하는 자세를 도처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집단 중시 가치관이 강한 사회지만 위기를 맞아 한층 공동체 의식이 고조된 것 같다. 지난주 피해지역의 하나인 이바라키현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후쿠시마에 인접한 곳으로, 농수산물의 방사능 오염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도중에 들른 슈퍼마켓에서 생수가 큰 병으로 열개 남짓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에 한 병씩”만 구입해 달라는 업주의 ‘호소문’도 있었지만, 방사능 공포 속에서도 사재기 충동을 억제하고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 양보하는 마음이 엿보였다.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자원봉사를 떠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끊이지 않았다.

개인만이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의 저력도 발휘되었다. 대지진 직후부터 기업과 학교, 시민단체들은 오히려 정부나 지방자치단제보다 빠르게 대응했다. 1995년 오사카와 고베를 강타한 한신 대지진의 경험이 큰 공헌을 한 면도 있다. 필자의 소속 대학도 도쿄 도심의 피난 장소로 지정되어, 교통망이 끊겨서 귀가하지 못하는 ‘귀택난민’ 5000여명을 하룻밤 수용했다. 필자도 대학 집행부에 속해 있었지만 대학에 남아 있던 교직원 300여명이 철야로 대응하는 모습에서는 감동을 느꼈다. 이후에도 다른 대학들과 연계하면서 피해지역 출신 학생에 대한 경제적 지원, 입학 특례 조처, 이재민에 대한 대학 소유 숙박시설 제공 등 대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연일 검토되고 실행에 옮겨졌다.

의류업체인 유니크로, 휴대전화 기업인 소프트뱅크, 식품과 유통업체들은 지진 다음날부터 각기 필요한 물품을 독자적으로 도호쿠 지역으로 보냈다. 큰 몫을 한 것은 시민단체들이었다. 필자 주변에서도 지진 당일 밤부터 서로 전자우편과 인터넷으로 연락을 하면서 재해지역 지원 체제를 갖추는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지진해일로 지방행정체계 자체가 송두리째 휩쓸려간 상황에서 경험이 풍부한 시민단체들의 몫은 매우 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정부와 행정의 문제점이 두드러졌다. 관료적 체질로 대응이 신속하지 못할뿐더러, 후쿠시마 원전에서 보듯이 비밀주의와 불투명성은 불안을 조장하기까지 한다. 종래의 일본 국가체제의 한계가 여실히 노정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역사적인 정권교체 이후 메이지유신 이래 지속된 성장 지향의 관료주도 국가체제의 변혁을 시도하는 가운데 발생한 대지진의 상징적 의미를 생각하면서, 일본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는 논의도 점차 대두하고 있다. 패전 이후 ‘전후일본’을 건설한 것처럼 ‘재후(災後)일본’을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새로이 건설해야 한다는 비전이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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