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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4.14 20:07 수정 : 2011.04.15 13:57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아프리카는 분열과 폭력, 가난의 상징이 되었다. 그중 소말리아가 유독 우리에게 익숙하다. <블랙호크 다운>이라는 영화는 소말리아와 수도 모가디슈를 멀지만 낯익은 곳으로 만들었다. 얼핏 보면, 잔혹한 군벌 세력에 맞서 싸우는 미국 특수부대원들의 전우애와 영웅적 희생을 그리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전쟁영화다. 찬찬히 들여다볼수록 미군 블랙호크 헬기의 막강 화력에 무모하게 맞서는 민병대원들의 광기와 모가디슈의 참상이 눈길을 끈다. 이 영화는 1993년 미국이 인도주의를 위해 치른 전투를 다루었다. 이 비극적인 전투에서 미군 병사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말리아인 희생은 훨씬 커서 1000명이 죽었다. 미군 병사들의 시신을 거리에서 끌고 다니는 소말리아인들의 만행에 미국은 치를 떨면서 병력 철수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소말리아의 폭력은 해적들의 인질극으로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인질에서 풀려난 한국인 선원들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며 몸서리를 쳤다. 해적들의 횡포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항공모함과 초음속 폭격기가 대양을 지배하는 시대에 해적이라니 어안이 벙벙한 일이지만,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 분쟁지역 전문 언론인인 김영미 피디가 해적마을에서 던진 질문에 열살짜리 아이는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커서 아빠처럼 해적이 될래요. 외국 배를 많이 납치할 거예요.” 소말리아 폭력의 밑바닥에는 빈곤과 기아가 도사리고 있다. 종족 간 분쟁과 오랜 가뭄으로 수백만 주민이 기아에 내몰렸고 눈만 퀭한 아이들이 수없이 목숨을 잃었다. 궁핍과 기아는 무지와 절망을 낳고, 그 적개심은 세상을 향한다. 국제사회의 개입마저도 실패한 소말리아에서는 약탈과 범죄가 기아로부터의 탈출구가 되었다.(자세한 이야기는 <세계는 왜 싸우는가?>에서 볼 수 있다.)

기아는 아프리카의 얘기만은 아니다. 얼마 전 세계식량계획, 유엔식량농업기구, 유엔아동기금은 북한 식량난이 한층 악화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밝혔다. 그리고 한국과 국제사회의 원조를 요청했다. 임산부와 어린이, 노인 등 600만명 이상의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특히 절실하다고 한다. 조만간 국제사회의 식량원조가 가시화될 조짐이다.

우리 정부의 반응은 참이나 민망스럽다. 조사 결과가 정확한지 믿을 수 없다는 태도다. 북한처럼 통제된 사회의 실상을 외부에서 파악한다는 게 어려울 건 분명하다. 그러나 북한의 식량난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 않은가? 1990년대 아사자 규모는 적게는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로 사정이 나아지기도 했지만 위태로운 사정은 여전해 보인다. 우리 일상에도 이런 정황을 쉽게 짐작하게 하는 예들이 적지 않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는 살집 좋은 배우 송강호가 북한 인민군 중사로 나왔지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북한 경비병력은 훨씬 왜소하다. 탈북 아동들도 상당수가 신체 발달이 부실하다고 한다.

정부는 북한 후계체제를 위한 선전용으로나 쓰일 거라며 대북 식량지원을 외면하는 모양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 정부가 식량지원을 거부하는 쪽이 오히려 북한의 체제 안정을 돕는 꼴이 되지는 않을까? 자존심 강하다는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창고에 쌓인 쌀이 처치 곤란하여 골머리를 앓는 남한이 있다. 그런데 같은 민족인 남한의 정부는 대북 지원을 거부하고 국제사회의 지원에도 제동을 거는 형국이다. 세상 얘기라는 게 시간이 갈수록 널리 퍼지게 마련이니,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 주민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기아와 빈곤은 문명과 평화에 도움이 된 적이 없다. 기아는 영양실조와 죽음을 낳고 살아남은 자에게는 분노와 적개심을 심는다. 그래서 기아와 빈곤을 방치하는 세계는 그 보복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기아와 빈곤, 고통을 외면하는 한, 그들에게 남북한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까닭이다.

구인회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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