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4.18 19:55 수정 : 2011.04.18 19:55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2011년은 전후 동아시아 지역질서와 기억을 정초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60돌을 맞는 해이다.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넘어설 것인가 차분히 돌아볼 때이다. 특히 일본 대지진 구호성금 제공(한국·동아시아)과 독도·교과서 문제 야기(일본)가 엇물린 상황을 맞아 더욱더 그러하다.

무엇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인해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가 거의 무임승차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약은 일본을 인류 최악의 전범국가로부터 합법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게 해주었다. 게다가 조약에 바탕한 미-일 안보동맹은 일본을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 안보전략의 요충국가가 되도록 해주었다. 역내 최악의 전쟁 대상이 최고의 동맹 대상으로 변전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핵심 피해국이 조약에 불참함으로 인해 전쟁 배상과 보상 문제 역시 철저히 왜곡되었다. 그 유산은 지금까지 역내 질서 및 동북아인들의 기억을 지배하고 있다.

원인은 한국전쟁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특수’로 인한 급속한 경제회복과 함께, 국제사회로의 복귀 역시 한국전쟁 때문이었음을 고려할 때 전후 일본의 경제와 안보를 정초한 기축 요인은 한국 문제였던 것이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전체 동북아 지역을 다자주의와 집단안보기구가 부재한 세계 유일지역으로 만들고 말았다. 한국, 필리핀, 대만, 그리고 미국이 잠시 추구했던 역내 다자기구 구축 노력은 일본과 영국의 완강한 반대 속에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일 양자동맹으로 귀결되며 사산하였다. 탈냉전 시기까지 지속되는 동북아 다자주의·집단안보기구 결여는 미-일 동맹체제 구축, 일본 안보 확보와의 역사적 교환물이었던 것이다.

말을 바꾸면 전후 동북아에서 2차 세계대전의 유산·기억·질서는 단기간에 혁명적으로 전변되었다. 그것은 한국전쟁이 놓은 유산·기억·질서에 의해 대체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전후 일본 사회를 규정해온 두 집단의식의 허위구조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냉전 초기의 ‘침략자·가해자 의식’이 후기로 오면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대표되는) ‘희생자·패전 의식’으로 변모되어, 이제 전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후자만 두드러지고 있다. 일본의 영토, 교과서, 참배, 과거 사과, 배상의 문제는 이 알레고리를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침략과 희생의 이분법에 기초한 후자로의 변모는, 한국전쟁에 의해 이미 실제 내용이 증류된 허위의식에 불과하다. 교과서, 영토, 과거 악행 사과, 배상 문제 등에서 일본을 보편문명국가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있는 이 허위의식을 극복하기 위해선, 현대 일본을 주조한 한국전쟁으로 인한 ‘은혜와 혜택의 의식’이 일본 국민정신의 하나로 추가되어야 한다. 인접 국가의 비극에 대해, 자국의 경제와 안보를 정초한 데 대한 ‘은혜와 혜택의 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일본의 보편문명국가로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논의의 핵심은 동아시아에서의 2차 세계대전의 유산·기억·질서가 아니라 한국전쟁의 그것들이어야 할 것이다. 즉 세계, 아시아, 일본에서의 일반적 담론구조인 ‘2차 세계대전의 유산과 기억’은 ‘한국전쟁의 유산과 기억’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것은 작게는 한-일 관계 개선과 동아시아 다자주의 건설을 위해, 크게는 동아시아 상호박애와 영구평화를 위해 반드시 점검되고 실현되어야 할 ‘현실’ 문제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두 번의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치른,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놓은 미국이 양대 강국(G2) 시대의 동아시아와 균형있게 만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첫 번째 아시아·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은 일본과 싸웠고, 두 번째 아시아·태평양전쟁(한국전쟁)에서는 중국과 싸웠다. G2 체제(미·중)와 중첩된 샌프란시스코 체제(미·일) 60주년의 시점에, 지진 성금과 독도 문제가 맞물린 상황에 함께 21세기를 건설해야 할 일본의 오늘을 묻는 연유이다. 그를 위해 우리 자신은 민족주의를 넘어 보편주의로 나아갈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는가? 21세기의 일본을 묻는 것은 곧 21세기의 세계, 동아시아, 한국을 묻는 것과 같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세상읽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