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21 20:12
수정 : 2011.04.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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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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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이 대세하락 흐름에 진입함에 따라 뉴타운 사업이 곳곳에서 중단 위기를 맞고 있다. 금덩이일 줄 알았던 뉴타운 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뉴타운 사업은 그동안에도 집값 폭등, 낮은 원주민 재정착률, 아파트 일변도의 획일적 주거유형, 소형 주택 철거로 인한 서민 주거난 및 대학가 하숙비 앙등 등 각종 문제점과 부작용을 드러낸 바 있다. 우리 사회의 강력한 ‘부동산 불패 신화’ 속에서 의도적으로 경시돼 왔을 뿐이다.
이 시점에서 뉴타운 사업이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원래 뉴타운 사업은 청계천 복원사업과 더불어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취임 초부터 핵심 사업이었다.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강북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사업 목표였다. 하지만 이면에는 집값 상승을 바라는 강북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표계산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02년 10월 은평·길음·왕십리 등 3곳을 시범 뉴타운 지구로 지정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취임한 지 불과 4개월 만이었다. 시범지구인 이 3곳에 투입한 시 재정만 1500억원가량에 이른다. 특히 이 가운데 은평뉴타운 지역은 이 대통령이 뉴타운 사업의 ‘모델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인 곳이다. 이 지역은 낡은 주거지역을 재정비해야 하는 다른 뉴타운 지역과 달리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을 개발하는 것이어서 사업 속도를 올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임기 내 은평뉴타운 사업의 가시화를 목표로 하다 보니 조기 보상에 따른 과다한 토지보상비를 지급하고, 고가 브랜드 아파트 업체 유치를 위해 사업비를 과다하게 책정하는 등 무리수가 뒤따랐다. 나중에 오세훈 서울시장 초기 불거진 은평뉴타운 고분양가 문제도 이 대통령이 씨를 뿌렸던 셈이다.
시범 뉴타운이 확정된 뒤 뉴타운은 또다른 정치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구청장들과 시의원들이 뉴타운 추가 지정 요구를 쏟아냈다. 이렇게 해서 서울시는 2003년 2차 뉴타운 12곳과 시범 균형발전촉진지구 5곳을 추가로 지정했다.
이후 추가 지정을 요구하는 민원이 계속되자 당시 이명박 시장은 한술 더 떠 2005년 6월 뉴타운특별법 제정을 건의한다. 뉴타운 사업의 정치적 효과에 눈이 먼 국회의원들은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을 그해 12월 여야 가리지 않고 초당적으로 통과시켰다.
서울시는 그사이 다시 3차 뉴타운 10곳과 2차 균촉지구 3곳을 추가로 지정했고, 이후 뉴타운은 경기도와 인천 등 전국 각지로 번져나갔다. 서울시의 경우 애초 시범사업지 3곳으로 출발했던 뉴타운 사업은 모두 33곳으로 대폭 늘어나게 됐다. 이후 뉴타운 사업지는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뒤 지정된 세운균촉지구 등 2곳을 포함해 모두 35곳으로 늘어난다.
이 뉴타운 사업지 35곳의 총면적은 27㎢(약 720만평)에 이른다. 서울시가 30여년간 추진해온 주택재개발사업 면적보다 더 넓다. 대규모 동시다발적 주택 철거로 인한 서민 주거 불안은 뉴타운 사업 추진 초기부터 예견됐던 문제지만 당시 이명박 시장은 이런 의견들을 모두 묵살했다. 자신의 정치적 욕심을 채우기 위해 뒷일은 생각지도 않은 것이다. 어쨌든 초기 뉴타운 사업이 불러일으킨 집값 상승에 대한 탐욕은 2007년 이 대통령의 대선 승리에 일조했고 2008년 총선에서 ‘뉴타운돌이’들을 양산했다.
이제 주택시장의 침체가 이어지면서 뉴타운 사업들이 ‘올스톱’되고 있다. 각종 폐해를 양산한 채 말이다. 이 씁쓸한 2000년대 뉴타운 잔혹사를 쓴 주범은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일말의 반성도 없다. 여전히 각종 토건 및 부동산 부양책으로 ‘토건세력의 수괴’임을 과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부동산 개발 포퓰리즘을 하루빨리 극복해야 할 시점에 경기 성남 분당을 지역에 출마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주택 소유자의 집값을 떠받쳐주기 위해 나온 리모델링 증축 방안을 공약으로 내놓은 것은 심히 유감이다.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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