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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02 20:15 수정 : 2011.05.02 20:15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로 당장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민초들이다. 높은 사람들이 멀리 떨어진 도쿄에서 “안심해도 된다”고 헛소리를 하는 동안, 사고 현장에는 시급 1900엔짜리 하청 노동자들이 원자로 안정화 작업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다. 언론은 가미카제 특공대를 들먹이며 ‘자기희생 정신’ 운운하고 있지만,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일을 시켜놓고 노동자들을 미화하는 것은 위선이라기보다 범죄행위이다.

발전소 현장 노동자들 외에, 최대 피해자는 역시 풀뿌리 백성들이다. 사고 직후 자살한 농민도 있다. 30년 이상 유기농을 하며 학교의 급식재료를 공급해왔던 농민이었다. 한평생 정성들여 보살펴온 땅이 방사능 오염으로 못쓰게 된 현실 앞에서 심정이 어떠했을까.

살아 있는 농민과 어민들의 상황도 절망적이다. 후쿠시마는 원래 비옥한 농경 지대이고, 그 해안은 풍부한 수산물의 보고였다. 핵사고는 민초들의 지속가능한, 자율적인 삶의 토대를 철저히 파괴해버렸다. 밭에 씨를 뿌리고 있어야 할 농민들과 바다로 나갔어야 할 어민들은 지금 도쿄에서 연일 시위를 하며 “우리의 삶을 돌려달라! 우리의 미래를 돌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동안 핵발전을 추진하거나 옹호해온 학자와 전문가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고 발생 직후부터 내가 제일 궁금하게 생각해온 게 이것이다. 사상 최악의 핵재앙을 초래한 이번 사고로 일본은 국토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고, 일본인들의 건강은 심신 양면에 걸쳐 장기간 심각한 후유증을 앓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비록 소수지만 양심적인 학자, 지식인, 활동가들이 끊임없이 경고를 해왔다. 그럼에도 정부나 핵산업계와 한통속이 된 학자, 전문가, 언론인들은 비판적 목소리를 일관되게 무시해왔다.

하기는 일본이든 어디든 오늘날 핵산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출세는 물론, 연구자로서 역경에 처해진다는 것은 과학자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비판적 연구자는 정부, 기업,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사태 이후 갑자기 일본 미디어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는 고이데 히로아키라는 핵전문가가 있다. 그는 핵공학자로서 자신이 왜 핵발전에 반대하는가를 여러 권의 저술을 통해 열심히 발언해왔다. 그런데 현재 교토대학 원자로실험소에 있는 이 환갑을 넘긴 과학자의 직위는 ‘조교’이다. 한국의 대학에서 말하는 조교와는 다르겠지만, 어쨌든 일본의 대학에서도 그 직위는 최하위직임이 분명하다. 최근 이 고이데 선생의 인터뷰를 번역 게재한 <프레시안>은 그를 ‘연구원’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아마 환갑 넘은 이가 ‘조교’라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예외가 없진 않겠지만, 오늘날 거대 과학기술 시대에 과학자가 정부나 기업의 뜻에 거스르는 연구를 한다는 것은 사실 생각하기 어렵다. 실제 현재 과학자 중에 정부, 군부, 대기업의 이해관계와 연계돼 있지 않은 연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독립적 과학연구, 자유로운 과학정신의 몰락이다. 과학자들이 창부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이런 현실에 절망했던 저명한 생화학자 에르빈 샤르가프는 생애 말년을 우울과 고독 속에서 보냈다. 그는 ‘작은 과학’이 진짜 과학이라고 말했다.

당연하지만, 일본 과학자들 중에도 조금씩 반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주부대학 교수 다케다 구니히코라는 인물이다. 그는 원자력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일본 핵사업의 중심부에서 일을 해왔다. 그런 사람이 이제 눈을 떠서 자신의 블로그에 사죄의 글을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수만년 동안 조상들이 의지하고 살아온 대기와 대지, 바다가 오염되고 초토화돼버린” 것을 개탄하고, 자신이 그동안 “사려 깊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사죄를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민초들의 삶터를 돌이킬 수 없이 무너뜨린 다음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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