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06 19:41
수정 : 2011.05.06 19:41
|
이종원 일본 릿쿄대 법학부 교수/국제정치
|
수천의 인명을 앗아간 재해를 앞에 두고 ‘지진외교’라는 표현은 다소 불경스러운 느낌도 든다.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국제사회의 인도적 의무이며, 또한 인류 공동체로서의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로이기도 하다. 이번 일본의 대지진에 대해 한국에서 대대적인 지원 움직임이 확산되고 기록적인 의연금이 모인 것도 그만큼 한국과 일본 사회가 가까워졌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자연재해가 국가 차원의 외교전략의 대상으로 ‘활용’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재해외교’는 자국의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향상시키고, 대상 지역과의 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3월의 아이티 지진 때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오바마 정권은 아이티 출신 이민자의 표도 의식하면서 대대적인 지원을 전개했다. 멀리 떨어진 중국이 대만과의 외교적 경쟁, 중남미 외교의 발판 다지기라는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관여한 것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3년 이란 대지진 때 미국의 지원과 대이란 관계 개선 시도, 1999년 터키 지진을 계기로 한 그리스의 지원과 양국 관계 개선 실현 등 ‘지진외교’의 전례는 많다.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중국의 ‘지진외교’는 자국의 참사를 오히려 정치·외교적 자산으로 바꾼 흥미로운 사례다. 베이징올림픽 개막을 88일 앞두고 일어난 대지진은 10만명 가까운 인명 피해와 막대한 경제손실을 초래했다.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걸고 올림픽 개최에 심혈을 기울여온 중국에는 큰 타격이었다. 더욱이 당시 티베트 독립 시위의 무력진압, 올림픽 성화 봉송을 둘러싼 마찰 등으로 중국은 외교적 고립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가운데 발생한 쓰촨 대지진은 중국에 대한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고, 중국 정부도 국제사회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진외교’를 전개했다. 당시 <뉴욕 타임스>는 “중국이 하룻밤 사이에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바뀌었다”고 표현했다. 일본 구조대의 ‘활약’이 크게 보도되면서, 티격대격하던 중-일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로 활용된 것도 기억에 새롭다.
이번 일본 대지진을 둘러싼 ‘지진외교’에서는 ‘미-일 관계 강화’가 두드러진다.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악화된 미-일 관계를 수복하려는 의도인 것은 물론이다. 주일미군 5만명 중 2만명가량이 동원된 구원활동은 ‘도모다치(친구) 작전’이라는 노골적인 이름이 붙여졌다. 대중매체에서도 ‘미-일 동맹의 심화’에 초점을 맞춘 논조가 눈에 띄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경계감이 두드러진다. 중국은 대일관계 강화라는 의도에서 초기부터 대규모 구원활동을 제안했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이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지원 수용 대상국 명단에서 미국이 ‘1순위’였음에 반해 중국은 ‘4순위’였다고 <아사히신문>은 보도했다. 외무성 중국담당자가 필사적으로 설득했지만 ‘3.5순위’로 조금 올라가는 데 그쳤다고 한다. 러시아의 원전 사고 기술 및 천연가스 제공 등의 제안에 대해서도 신중한 견해가 우세하다. 지진 직후에 일어난 러시아 전투기의 일본 영공 접근, 중국 해상경비대 헬기의 자위대 호위함 접근 등이 잇달아 보도된 것도 일본의 ‘지진외교’에 신냉전의 그늘을 드리우는 데 기여했다.
한국은 미국과 더불어 지원 수용 대상국 ‘1순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중학교 교과서의 독도 기술 문제가 불거지면서, 모처럼 조성된 한·일 두 사회 간의 공감대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독도 해양기지 건설이 본격화되면 다시금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역사·영토문제와 같은 현안에 대처하면서도,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토대가 되는 한국의 ‘지진외교’가 지혜를 발휘할 때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법학부 교수/국제정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