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10 20:06
수정 : 2011.05.1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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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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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굿판에서 시골 노파들의 쌈짓돈을 확실하게 털어내는 영매의 축수처럼 ‘딱 사흘만 앓고 자다가 가시지’는 못했지만 큰 병 없이 아흔네 해를 살고 석 달 동안 요양원에 누웠다 가셨으니 세상이 말하는 호상임에 틀림없었다. 여섯 남매에 열두 손자와 올망졸망한 증손들까지 다 모여 떠들썩한 잔치 같은 장례를 치렀다. 출상 전날 밤 만취한 막내삼촌이 “엄마!”를 부르며 영정 앞에서 울다 잠든 것과 하관 때 오십 년간 시집살이를 했던 큰엄마가 애증의 통곡을 한 것을 제외하곤 크게 우는 사람도 없었다. 할아버지와 합장한 묘에 봉분이 다져지는 동안 갈 길이 먼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앞으론 제사를 없애고 종교의식으로 대체할 예정이라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먼저 말하기 전엔 묻지 않는, 좋게 말하면 ‘쿨’하고 나쁘게 말하면 콩가루 같은 대가족이 앞으로 이렇게 다시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 이제 고아가 되셨네?!”
일흔을 코앞에 둔 아버지에게 여전히 철딱서니인 딸년이 농을 던졌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부모와 헤어지면 길 잃은 아이처럼 서럽고 외로울 것이다. 그래도 먼저 고아가 된 엄마와 이제 막 고아가 된 아버지는 내리사랑에 뭐라도 하나 더 챙겨주려 찬장을 뒤진다. 버스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터미널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노라니 울컥 가슴에 무언가가 치민다. 이렇게 자꾸 헤어지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웃으며 이별할 수 있을까?
사랑과 감사를 한꺼번에 몰아 바쳐야 하는 5월이 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이른바 5월은 ‘가족의 달’이다. 뜻깊은 일을 잊지 않고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 기념일이란 게 필요하긴 하겠지만 과연 그 이름과 실상이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각박한 현실에 고단한 사람들에게 5월은 가뜩이나 빡빡한 가계부에 붉은 표지가 새겨지는 적자와 부담의 달에 다름 아니다. 때맞춰 언론에서는 기념일의 주인공들에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같은 질문을 퍼붓고, 몇몇 소수 의견을 제외하곤 부동의 1위가 “닥치고 현금!”이라는 결과를 발표한다. 돈, 현금이 좋다는 의견이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취향에 맞지 않거나 필요 없는 물건을 받으면 주는 사람은 맥없고 받는 사람도 허탈하다. 하지만 편리하고 확실한 만능의 현금이 얼마만큼 사랑과 감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 10만원어치의 사랑과 50만원짜리 감사가 과연 가능할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불효녀인 나는 얼마 전 전에 없던 별짓을 했다. 새로 펴낸 산문집을 집에 부치며 용기를 내어 마음을 함께 담아 보낸 것이다. 사실은 책의 내용에 소아우울증을 앓았던 나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와 ‘그 시대의 일반적인 남성을 기준으로 나쁘지는 않았지만 지극히 태무심했던’ 아버지에 대해 ‘긁어놓은’ 것에 제 발이 저려 선수를 친 것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한번쯤 꼭 하고 싶었던 말을 마흔이 넘어서야 책의 속지에 적어 넣었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 엄마와 아버지께-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난생처음 하는 고백인지라 짧은 문장을 쓰는 동안 온몸에 닭살이 돋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신달자 시인의 책 제목처럼, 진심을 표현하는 말은 그토록 단순하고 소박할 수밖에 없다. 상처를 무기 삼아 날을 세운 채 방황하는 딸을 끝까지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세상 속에 내 자리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뒤늦을망정 아주 늦은 것은 아니었던지, 엄마와 아버지는 지금껏 속만 썩인 말썽쟁이 딸의 고백을 마음의 백지수표처럼 받아들고 끝내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누군가 말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삶이 그러하듯 사랑도 순간이기에 진정한 삶의 용기는 아낌없이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일단은 굳어진 입에서 그 말을 꺼내는 것이 시작일 터, 봉투에 얼마를 넣을까 하는 고민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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