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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17 20:06 수정 : 2011.05.18 13:57

황광우 작가

1980년 나는 당시 ㅅ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서울의 신림동에서 홀어머니와 동거하고 있었다. 형이 문을 두드린 것은 5월18일 오전 8시였다. 비상계엄령이 확대되었으니 피신해야 한다는 형의 무거운 주문이었다. 형과 나는 어머님께 작별 인사를 고하고 길을 나섰다. 광주로 가기 위해 터미널에 나갔는데 사귀던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의 열정은 일탈을 저지르게 한다. 예정에 없던 강화도행 버스에 오르게 된 것은 하루만이라도 더 연인과 함께 있고픈 욕망 때문이었다. 다음날 공중전화 박스에서 돌린 다이얼에서 “광주가 피바다다. 내려오면 큰일 난다”는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이후 나는 잠행에 들어갔다. 서울의 미아리에 있는, 애인의 친구가 사는, 반지하의 골방이 내가 역사의 현장을 기피하고 숨은 공간이었다.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일 게다. 저 역사의 현장을 기피한 것을 크게 후회하게 된 것은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애인이 살던 반포아파트 인근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으면서 나는 보았다. 텔레비전에선 한 떼의 청년들이 얼굴에 두건을 두르고 트럭에 올라 손에 몽둥이를 쥐고 흔드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들은 폭도였다. 살인자는 어데 가고, 광주의 젊은이들만이 영락없는 폭도로 보도되는 이 장면, 진실과 허위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히는 이 장면을 나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

역사의 흐름에 회한이 깊었던 우리는 만나면 동이 트도록 함께 술을 마시곤 하였다. 언제였을까. 나는 한 후배로부터 1980년 광주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후배는 5월20일 문화방송 방송국이 불타던 그날 밤 공수부대원의 총을 머리에 맞고 쓰러졌다. 죽었다. 죽었는데, 총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기적처럼 되살아난 녀석이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그러다 도청 점령당하기 전날, 집으로 가지요. 동네 어른들에게 잡혀 동명교회의 탑에 갇히게 돼요. 그날 밤 공수부대가 들어오고 한 여성이 선무방송을 해요. ‘시민 여러분, 나와 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애타고 간절하던지 한신대에 다니던 형이 기어이 일을 냈지라. 교회에는 두꺼운 커튼이 있었는디, 그 커튼을 다 뜯어내 밧줄을 만들었고 밧줄을 타고 밖으로 나갔지라우. 형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우리들은 합동장례식에 참여해요. 당시의 망월 묘역은 험악한 곳이었어요. 여성 시신이 한 구 있었는디, 자동소총으로 난사당한 시신이었지라우. 시신을 두고 어머님 두 분이 ‘내 딸이다’라면서 서로 싸우드랑께라우. 오랫동안 방치된 시신이라 심하게 부어 있었지요. 두 분이 시신을 만지면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다투는 것도 아니고, 그런 장면을 보고선 더 이상 못 있고 돌아와 부렀지라우. 그 뒤 우리 어머님은 한달간 죽은 여자분을 위한 단식기도를 올렸구만요.”

교회 첨탑에서 커튼을 찢고 도청으로 달려간 그 한신대생은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무엇이 그를 도청으로 달려가게 하였을까? 왜 후배의 어머님은 한달간이나 곡기를 끊고 기도를 올려야만 했을까? 딸의 주검을 마주한 그 어머님들의 영혼은…?

30년이 지났건만 나는 아직도 그날 광주의 진실을 모른다. 그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렸던 분들이 이제 오십을 훌쩍 넘기고 있다. 물론 그날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 그 후 7년, 1987년 6월 민중대항쟁에서 500만명의 시민들이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방방곡곡 일어나 마침내 독재자를 몰아내게 되었고, 이어지는 대파업을 통해 그동안 개·돼지 취급 받으며 살아온 노동자들이 마침내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며 일어서게 되었다. 하여 이제 우리들은 ‘사랑도 명예도’ 남김없이 간 윤상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가신 분들의 넋은 편하게 있는 것인지 나는 늘 돌이켜보게 되고, ‘그날 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는 물음 앞에 떨리는 영혼을 주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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