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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5.18 18:46 수정 : 2011.05.18 18:46

한창훈 소설가

오키나와를 가본 적은 없지만 그곳이 오래된 역사와 문화,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일본에 강제합병당했고 2차대전 때는 폭탄받이가 되었던 곳이며, 그런 역사 때문에 거대한 미군기지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곳 주민들은 할아버지 묘 너머로 뜨고 내리는 전투기와 그물 손질하는 어부들 뒤로 들고 나는 이민족의 함선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그곳을 떠올리면 슬퍼지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거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제주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진행중이다. 제주 남쪽 강정(江汀)마을에 4년째 해군기지가 건설중인 것이다. 물이 아름다운 곳. 그 마을 앞바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전지역이자 천연기념물 442호 연산호 군락지이다. 또 있다. 해양부 생태계보전지역이자 환경부 천연보호구역이며 절대보전연안지역이자 도립해양공원이다. 제주 올레길 중에 경치가 가장 뛰어나다는 제7코스에 속한 곳이기도 하다.

이 정도 겹겹의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았다면 괭이질이라도 함부로 못할 것인데 포클레인으로 한방에 엎어버리는 곳. 토목공사 앞에서는 모든 가치가 사라져버리는 곳. 역시나 대한민국이다.

오키나와와 다른 점은 아군이 그런다는 것이다. 하긴 30년 전 광주에서도 그랬다. 갑자기 나타나 여고생부터 머리 벗겨진 중늙은이까지 두들겨 패고 대검으로 찌르고 총으로 쏴 죽이던 군인들을 나는 보았다. 적군인 줄 알았다. 적군이 아니면 대답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군인이었다. 군인이 있어야 할 곳은 가장 위험한 국경 아니던가.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군가의 한 부분이다. 믿고 단잠을 잘 수 있게 해주는 것, 의무의 미덕이다. 한데 강정마을 사람들은 이미 불면이다. 찬성이든 반대이든 마찬가지다.

사업의 주체가 주민들을 이간질시켜 두 패로 만들어놓은 모습, 이거 자주 봐왔다. 이곳도 예외가 아니다. 찬성한 사람들에게는 두둑한 보상금을 주었다. 돈이 생기면 물질을 안 해도 된다. 물질 힘든 것은 나도 안다. 나는 해녀였던 할머니 따라다니며 물질을 배웠다.

문제는 찝찝하다는 것, 마음이 찝찝하면 잠 못 이룬다. 특히 이 마을 사람들처럼 400년간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이들은 더욱 그렇다. 무심코 싫은 소리 한마디만 해도 그게 걸려 한숨이 나오고 마음이 불편한 게 사람 아니던가. 강정마을 카페(cafe.daum.net/peacekj)에는 찬성의 편을 들었다가 죄책감 때문에 오래도록 마음고생한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33명이 전과자가 돼야 했고 생업을 챙기지 못하면서도 수천만원의 벌금을 맞았다. 이것도 잠 안 온다. 이 정도면 생활이 찢어발겨진 수준이다. 우리의 해군은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잠을 설치게 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리적인 위치도 그렇다. 최남단에 해군기지를 세우는 것은 권투선수가 혹시 모를 상대 선수의 기상천외한 공격에 대비하여 꼬리뼈 방어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뒤통수를 단련시키는 사격선수 같은 것이다.

1.2㎞ 용암 바위인 구럼비 바위를 뜯어내고 기지를 세우면 관광미항이 된단다. 이것도 참 특이한 논리이다.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데 군사시설을 세우면 더 아름다워진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미모의 여배우에게 총을 들게 하자는 소리인가.

제주 4·3 사건 때 민간인 학살 장소의 공통점은 경관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고향 산천을 배경으로 단체로 죽어갔던 것이다. 그 야만의 역사가 현재형으로 되풀이되는 곳이 강정이다. 국방부가 해양대군 정책을 철회했는데도 공사를 강행하는 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입맛 때문이라면 우리는 오키나와를 불쌍하게 생각할 여유도 없다.

군인에게는 교전시 적을 사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자국민의 세금으로 자국민의 땅을 빼앗는 권리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누가 준 걸까.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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