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각종 돌봄노동은 수요자들은 수요자들대로, 공급자들은 공급자들대로 절박한 형편에 놓여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돌봄노동자라고 불리는 인력은 30만~6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정부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8만명을 제외하면 그나마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돌봄노동자의 수급을 맞추는 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돌봄노동을 포함하여 사회서비스 부문의 노동은 대부분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해서 금융세계화와 외환위기 이후의 ‘고용 없는 성장’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제조업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어렵고 따라서 대부분 저임금 단순노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삶의 질과 관련한 콘텐츠를 부여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수급안정을 도모한다면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이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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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존엄한 일자리, ‘돌봄노동’ / 김윤자 |
어머님은 아침에 화장실 다녀오셔서 돌아가셨다. 새벽이면 으레 제 베개를 끌어안고 할머니 침대방으로 건너와 아침잠을 자던 꼬마조카를 보시고 환하게 웃으셨는데, 숨이 가쁘시다며 내 품에 안기시더니 이내 돌아가셨다. 마치 촛불이 잦아지듯이.
입원실과 집을 오가시는 동안 6남매가 돌아가며 간병 당번을 맡았는데 자리에 누우신 지 두달여 만이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그리움이 몰려왔지만 어머님이 죽음을 대면하시던 조용한 모습, 마치 선물인 양 떠나기 직전 보여주신 환한 미소는 삶과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가르쳐 주셨던 듯싶다.
불효의 어리석음을 돌아보다가 문득, 역사상의 모든 사회운동들이 궁극적으로 존재의 존엄을 위해 싸웠던 것이라면,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진보적인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균수명의 증가와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는 각종 돌봄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고 있다.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보육시설도 없는데 일하러 나가야 하는 맞벌이 부부,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회한을 남기고 ‘생애의 존엄을 모조리 까먹고 간다’고들 한탄하는 치매, 불의의 장애인들, 이들에게 ‘돌봄노동’은 절박한 생활상의 요청이다.
18세기 중농주의자들은 농업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산업이라고 보았지만, 이제 농업 인구는 미국의 경우 2% 안팎, 한국도 6% 안팎에 머물러 있다. 제조업 인구 역시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공업선진국에서 20%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나머지 60~70%를 서비스산업 인구가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수치가 농업이 하잘것없다거나 제조업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반대로 농업은, 곡물인플레이션(애그플레이션)이라는 최근의 신조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전략적 중요성이 재확인되고 있고 제조업은 서비스산업의 발전을 떠받치는 기본 토대이다. 따라서 이들 수치는 의식주의 해결에 소요되는 사회적 자원의 비중은 줄고 대신 여타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많은 인적 물적 사회자원이 할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 기본적인 의료서비스의 보장, 보육과 교육, 노후의 안정과 같은 사회적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7일 14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돌봄노동자 법적 보호를 위한 연대’가 간병인, 요양보호사, 산모도우미, 파출부, 가정부 등 이른바 돌봄 가사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근로기준법 예외조항의 삭제와 고용지원시스템 구축, 산재와 고용보험 우선 적용을 촉구했다. 아울러 6월1일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표결로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가사노동자 보호협약에 정부가 반드시 찬성해줄 것도 요구했다.
이처럼 각종 돌봄노동은 수요자들은 수요자들대로, 공급자들은 공급자들대로 절박한 형편에 놓여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돌봄노동자라고 불리는 인력은 30만~6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정부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8만명을 제외하면 그나마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돌봄노동자의 수급을 맞추는 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돌봄노동을 포함하여 사회서비스 부문의 노동은 대부분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해서 금융세계화와 외환위기 이후의 ‘고용 없는 성장’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제조업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어렵고 따라서 대부분 저임금 단순노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삶의 질과 관련한 콘텐츠를 부여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수급안정을 도모한다면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이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이처럼 각종 돌봄노동은 수요자들은 수요자들대로, 공급자들은 공급자들대로 절박한 형편에 놓여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돌봄노동자라고 불리는 인력은 30만~6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들은 정부 사회서비스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8만명을 제외하면 그나마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돌봄노동자의 수급을 맞추는 일은 이제 우리 사회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돌봄노동을 포함하여 사회서비스 부문의 노동은 대부분 노동집약적 성격이 강해서 금융세계화와 외환위기 이후의 ‘고용 없는 성장’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도 기대된다. 제조업처럼 기술혁신을 통해 고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어렵고 따라서 대부분 저임금 단순노동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삶의 질과 관련한 콘텐츠를 부여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수급안정을 도모한다면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이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김윤자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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